여수 일기 (4) 잘하고 있어

by 이가연

50분 동안 총 열두 곡을 불렀다. 그 정도면 멘트를 좀 한 편이다. 내 곡은 짧으면 2분, 길어도 3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없으면, 멘트가 잘 안 나오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마냥 노래만 연달아 부르게 되어서 힘들다. 그런 벽에다 대고 노래하는 듯한 경험을 2017년 무렵 공연 초창기 때 정말 많이 쌓았다.


이제는 사람이 있든 없든, 멘트를 할 거 같다. 어딘가에 한 명은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관객석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또 조명 탓에 사람들 표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보면 '아, 내가 지금 하는 말이 공감되는구나. 잘 듣고 있구나.'아는데, 안 보여서 분위기 감지가 잘 되지 않았다.


커버곡은 멘트할 말이 별로 없지만, 자작곡은 아무래도 말이 술술 나온다. 모르는 곡인만큼, 소개를 해야 그만큼 사람들이 집중해서 들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그런 너라도'나 '착해 빠진 게 아냐' 같은 경우는 언뜻 들으면 그냥 발랄한 노래 같다. 내용을 알고 들으면 와닿는 게 다르다.


그런데 미니 1집 발매 이후, 라이브가 처음이라 멘트가 살짝 낯설었다. 여기가 마산, 창원이면 내가 이해를 하겠는데, 전라도에 와서 왜 눈치를 보나. 9년 째 하던대로 당당하게 이 곡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무슨 내용인지 말하라. 이 앨범에 든 곡들은 전부 같은 사람 때문에 쓴 곡이라든가, 영국 전후로 내 자작곡의 감성과 깊이가 달라졌다는 등의 멘트를 할 때면, 어딘가 간이 쪼그라들었다.


박수가 크게 나올 때면, 이 곡이 잘 먹혔구나 하고 알았다. "월량대표아적심" 부를 때 환호 소리가 제일 컸다. 생각보다 관객 나이대가 있어서, 가장 아는 곡이 아니었나 싶다.

보통 공연은 30-40분 한다. 50분 공연은 나도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공연 시작 30분쯤 되니 역시나 좀 힘들었다. 물리적으로 힘든 것보다, 집중력이 팍 떨어지는 거 같다.

2018년에 40분 공연 다니던 당시에는, 공연만 끝나면 아주 피곤해했다. 이번엔 50분이었음에도 '예전보다 훨씬 덜 피곤해하네?'싶었다. 그땐 심지어 다 서울이었고, 이번엔 서울에서 기차 타고 3시간 여수까지 온 게 아닌가.

그건 체력이 늘은 거라기보다, 그만큼 공연 경력이 쌓인 덕이다. 그때랑 지금이랑 사람들 앞에서 편안함이 다르지 않을까. 한 곡 한 곡 긴장이 덜 하다면, 당연히 덜 피곤할 거다.


나중에는 다른 유명한 가수들처럼 3시간, 4시간 공연도 재밌게 잘 하겠지.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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