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었으면 다행이다. 배운 점이 있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 저녁 6시쯤에는 몸이 좀 괜찮아졌다. 갑자기 아플 일은 어지간하면 두통 아니면 생리통이기 때문에, 애드빌은 멀리 갈 때 항상 가지고 다니는 편이 좋다.
저녁 먹고 잠깐 한 10분 동안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었다. 햇빛 받으면 빨갛게 빛나던 내 머리칼이 좋았다.
시작은 오후 7시였고 나는 4번째 순서였다. 앞 세 팀은 전부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팀인데, 나부터 뒷사람들은 혼자였다. 그러면 첫 단추를 끊는 나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앞 팀들은 다 사운드가 빵빵했는데, 조용해지는 그 첫 번째가 나였다. 하지만 나의 첫 곡은 인어공주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후에 내가 인어공주 부르기 시작할 때, 객석에서 아이들이 좋아해 줬다고 들었다.
인어공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부른 것뿐만 아니라, 무려 20개의 학교 메인 입시곡으로 썼던 곡이다. 늘 인어공주가 메인, 자작곡이 서브였다. 장점은 그 곡은 무대 경험이 많아 어디서도 안 떤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하도 많이 불러서 매너리즘에 빠져 집중을 못하고 거의 항상 딴생각하며 부르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무대는 준비를 했다. 이 노래는 준비를 아예 안 하고 부르고 다니는 곡 0순위였다. 앞으로 20년 동안 한 번도 안 불러도, 20년 후에 가사를 안 잊을 자신이 있을 정도다.
이번에 했던 건 소리 연습이 아니다. 소리는 이미 잘 내니, 동작을 연습했다. 어느 부분에서 발을 움직일지, 어느 단어에서 손동작을 할지 구상했다. 예를 들어, 'street' 단어에서 손을 뻗기로 결정했으면, 적어도 그 'street' 부르면서는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준비한 동작을 딱 해야 하기 때문에 뇌를 써야 한다.
그 방법이 제대로 통했다. 이 노래는 움직임이 들어가면 좋은 뮤지컬 곡이기 때문에 잘 먹혔다. 근래 이 노래를 이렇게 집중해서 불러본 적이 있었나. 연습 때도 이렇게 안 됐는데, 마음에 들게 잘 불렀다. 앞으로도 이 곡은 딱 이렇게 부르면 된다.
다음 곡은, '아직, 너를'이었다. 이 노래는 감정 과잉을 염려하던 곡이다. 그런데 감정 과잉은 몰입을 했을 때 온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몰입을 제대로 못했다. 첫 곡과 달리 음향 환경이 100% 마음에 안 들었다. 그걸 무시해야 하는데, 내가 무대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시가 잘 안 되는 건 ADHD 영향이 있다.. (내 의지와 다르게 무시가 잘 안 되는 게 나의 주 증상 중 하나다.)
인어공주 하나 3분 집중도 연습 때 못하던 거라, 두 곡 다 100% 집중해서 부르기란 지나친 기대였다.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성과를 보였다. 첫 곡에 집중력을 다 써서 그랬던 건지, 이 곡의 집중력은 어떻게 유지할 건지에 대한 대책은 천천히 세워야겠다. 지난번 라이브 때 잘해서, 기차 안에서도 계속 그 라이브를 들으면서 왔는데 좀 아쉬웠다. 그때 바람대로, 이 곡 기복이 없길 바란다. 앞으로는 이 곡이 나의 메인곡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 다 바쳐 만든 곡인만큼, 이 곡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곡인만큼 더 많은 분들께,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길 바라며 불러보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준비했는데, 괜히 감정 흔들릴까 봐 "한 사람에게"라는 말은 고민 끝에 뺐다. 이번엔 차라리 넣었으면 집중이 되었을까. 노래 부르면서 걔 얼굴이 팍 떠올랐는데, 확 치웠다. 이 노래는 부르면서 감정 흔들리는 걸 무서워하는 거 같다.
공교롭게도, 주최 측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도 첫 번째 곡 끝나고부터 두 번째 곡 앞부분까지 잡음이 심히 들어가서 영상으로 편집할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두 번째 곡에선 무대 조명을 첫 번째 곡과 다르게 쏴줬는데, 얼굴이 갑자기 칙칙하고 화장 이상하게 한 것처럼 변했다. '조명 쏜 사람 저거 저거 남자다. 여자면 첫 곡하고 두 번째 곡하고 저렇게 얼굴 빛깔이 다른데 저렇게 했을 리가 없다'라며 투덜거렸다. 영상은 이 곡만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