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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 : 우주의 계획

Divine Timing

by 이가연

타이밍엔 다 이유가 있다.

휴학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서 아쉬웠다. 1학기 다니고 1년, 1년 다니고 1년 쉬기를 반복하니, 학기 중에 친했던 친구도 다 떨어져 나갔다. 휴학 없이 졸업했으면 2020년에 석사를 시작했을 수 있다.

그런데 2020년에 무슨 일이 생겼나. 코로나가 터졌다. 까딱하면 그냥 한국에서 석사 하는데 안주했거나, 가서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뭘 하지 못했을 수 있다. 코로나는 2022년까지 지속됐다. 휴학을 여러 번 한 덕분에, 2022년 해외를 여러 번 나갔다. LA에 석사 유학 가고 싶다고 탐방 겸 음악 캠프도 가고, 스페인이랑 영국도 처음 가봤다. 그리곤 2023년에 유학을 갔다.

유학 가기 전에는 정신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사기꾼을 만났다. 경제적 손실은 없었으나, 꿈을 이용한 정신적인 사기였다.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후에도 9월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그 생각에 아주 힘들어했다. 매일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뇌에 깔려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프지만 꼭 겪었어야 하는 일이다. 그때 겪지 않았더라면, 나중에는 돈이 걸려있었을 수도 있다. 사기꾼이 얼마나 그럴싸하게 말을 잘하는지, 저 사람이 어떤 경력을 가지고 어떤 증거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도 왜 다 믿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중한 경험치를 얻었다. 분명 나중에 다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일 때문에, 2023년 상반기에 유학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도 않고 보냈다며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차피 난 준비랄 거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 시기에는 그걸 겪었어야 한 거란 걸 자연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걸 알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작년 힘든 시기를 보내며 우주의 계획에 대한 나의 영적인 믿음이 치솟았다. 특히 작년 8,9월에 '나중에 지금 이걸 왜 겪는지 다 알게 되리라' 수차례 되뇌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년 8월엔 '그런 너라도'와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너무 멋진 곡이 탄생했고, 9월엔 처음 창원 가서 엄청 힐링하고 '내 기준' 소도시의 매력을 느꼈다. (시골이라고 비하하던 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애증이고 근본은 사랑이다. 마창진 지도도 다 그릴 거 같다.)

무엇보다 그 시기를 겪어야 했던 이유는 '타이밍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를 외칠 수밖에 없게 상황이 흘러갔다. 내가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영국에 왔는데 그게 너 때문이란 걸 알렸는데도, 수백 번 기획사, 출판사, 일자리에 지원했는데도, 처절하게 다 무응답이었다. 안될 시기에 너무 쏟아부은 거 같아서, 타이밍을 믿고 남은 10월부터 12월 졸업식 때까지는 마음 놓고 쉴 줄 알게 되었다.

그랬더니 올해는 미니 1집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내 생애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공연도 작년 하반기 때는 아무것도 안 잡히더니, 올해는 좀 생겼다. 공연은 원래 겨울이 비수기다. 공연해서 돈 받은 건 거의 전부 봄, 여름이었으니 작년 하반기에 암울했을만하다.

그래서 사실 올해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여자친구가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작년 여름, 가을 같았으면 생각만 해도 눈물 나서 어렵다. 점점 내가 할 데까지 다 했으면, 우주에 내맡기는 힘이 생겼다. (남들은 그렇게까지 하지도 않는단 걸 너무 잘 알게 되기도 했다. 브런치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에 한 사람 보라고 올린 영상만 82개다.)



인간인데 왜 불안하지 않겠나. 자꾸 늦어지는 것 같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특정한 사건, 만남, 기회가 다 적절한 순간에 이루어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이 아니라는 건, 더 좋은 때가 있음을 알게 된 경험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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