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문득 중고등학생 때 나에게 고마운 점들이 생각이 났다. 상담실 활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학생 때, 학교에 위클래스가 처음 생겼다. 그 당시 위클래스에 대한 인식은, 문제 있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진로 반대 문제로 너무 힘드니, 학교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외부 기관을 혼자 찾아갈 수도 없으니 그래서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늘 상담실의 도움을 받았다. 힘들 때는 매일, 이틀에 한 번도 갔다.
그러니 영국 가서도 자연스레 '힘든 일 있어요. 학교가 도와주세요'하고 웰빙팀을 쉽게 찾았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 어려움은 디폴트값 아니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일로 상담을 찾아도 될까'라는 고민을 살면서 해본 적이 잘 없다. 중학교 1,2학년 때는 기억도 잘 안 나니, 기억 나는 순간부터 늘 전문가와 함께였다.
예약 없이 그냥 가서 처음 보는 상담사에게 후루루룩 이야기하는 일이 너무 쉬웠다. 나도 영어로 상담받는 건 처음이었지 않겠는가. 가장 뿌듯했던 건, 학사 졸업반임에도 그 시스템을 몰랐던 영국인 친구가 나 덕분에 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고맙다. 기억은 안 나지만, 위클래스를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진 않았을까. 역시 그런 거 상관 안 하는 나 답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라, 정신과나 심리 상담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차원이 다르다. 아무도 가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중고등학교 내내 잘 이용한 것에 고맙다.
두 번째는, 꿈을 지키기 위해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줘서 고맙다. 당시는 2013, 14년이었으니 지금처럼 사람들이 매일 유튜브를 보지 않았다. 유튜브보다 블로그가 더 강세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축제 무대마다 영상을 블로그에 아카이빙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보컬 전공하면 안 된다고 해도, 무대에서 노래를 잘하는 모습을 블로그에서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해놨다. 그것이 내가 꿈에 진심이라는 증거였다. 당시 국어 학원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끼를 가지고 어떻게 그냥 공부하며 지낼 수가 있냐고 안 답답하냐고 하셨다.
또한 꿈과 목표에 대한 글도 자주 썼다. 2014년 고2 때는 졸업하고 미국에서 음악 공부할 거라고 써놨는데 그 꿈을 이루기까지 9년이 걸렸다. (고3 때는 영국으로 바뀌어 영국 학교 학사 오디션도 봤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블로그에 기록한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와 '기댈 곳이 필요해서'였다. 그래서 지금도 똑같이 브런치와 유튜브에 기대고 있다. 플랫폼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똑같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내가 가진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기록하는 습관이 중고등학생 때부터 있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블로그에 쓴 글만 모아서도 소장책 한 권이 있다.
마지막은,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그때부터 이미 너무 잘 알아줘서 고맙다. 성인 이후로 그것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는 미성년자라 혼자 여행은 못 다녔으니, 지금은 '영국 여행'이 추가됐을 뿐이다. 학창 시절 내내 음악, 글쓰기, 외국어를 잘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노래, 글쓰기, 영어 대회 상을 많이 탔다. 노래 대회에서 초등학교 4, 5, 6학년 매년 수상했던 것이, 중학교 때 싱어송라이터 꿈을 확고하게 심어주는데 영향을 미쳤다. 중학교 때는 영어 노래 대회, 학교 축제, 선배들 졸업식 무대, 그리고 고등학교 때도 학교 축제, 교장교감 선생님 취임식, 본인 졸업식 무대에 서며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초중고 시기를 떠올리면, 특히 초등학교 때는 노래했을 때만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지난 1년이 성인 이후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은 제외하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면서 초중고 시절보다 더 힘든 시기는 안 찾아올 거라 믿는다. 당연히 1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 30대가, 30대보다 40대가 더 행복한 인생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10대의 나에게 고마운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