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 이후로, '인사이드 아웃'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슬픔'으로 기억된 장면 뒤에 사실은 '기쁨'이 있었다. 영국에서 좋아했던 펍이 슬픈 장소가 아니라, 기분 좋은 장소로 다시 쓰였듯, 나의 다른 '인사이드아웃' 구슬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먼저 '기쁨' 구슬에 넣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그 뒷면이다.
1. 학생상 시상식 : 내가 수상에 실패하자, 나는 정말 상관없는데 친구가 내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고 싫었다. 나는 "동아리가 받았네. 개인이 팀을 어떻게 이겨." 했다. 당연했다. 친구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할 얘기 했으면 좋겠는데, 답답했다. 나는 같이 조잘조잘하는 사람이 좋은데, 친구랑 성격이 안 맞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하니 "야 눈치 좀 그만 봐."라는 표현은 영어에 없어서, 나도 말을 못 해서 답답했던 거다.) 또한 친구가 기차 시간 때문에 일찍 돌아가야 했는데, 같이 돌아가기 아쉬워서 난 남아있었다. 옆사람에게 말 걸고 해도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도 무서웠다. 아직도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밤길로 기억한다. 영상 찍으면서 말하고, 카톡 음성 메시지로 말하고, 별 짓을 다 해가며 어떻게든 씩씩하게 걸었다. 시상식 드레스라 춥기까지 했다. 거긴 사우스햄튼 시티 센터 쪽 거리가 아니라 사람은 없고 어두컴컴한 숲 속 같은 길이었다. 평소 밤에 공원도 한 번 안 들어가던 나였는데, 거긴 훨씬 더 위험했다. 하지만 친구와 워낙 예쁜 사진을 많이 남겼고, 그 시상식 최종 후보에 올랐던 것이 좀 굉장한 일이었어서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2. 라디오 DJ : 내 방송을 제대로 안 챙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애써 해 둔 녹음이 있는데, 방송 사고가 잦았다. 게다가 대체 이 방송을 몇 명이나 듣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도 없었다. 듣는 사람의 피드백도 없고, 담당자도 잘 안 챙겨주는 것 같고, 게다가 매주 무보수 봉사 활동이었으니 언제 그만둘지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엔 분명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게 다 이력 한 줄이다'라는 생각에 했고, 걔가 얘기했던 노래도 라디오에 틀고 그랬다. '지역 방송국 케이팝쇼 라디오 DJ'는 참 매력적인 타이틀이었고, 많이 들어달라는 소식을 당시 걔가 들어와있는 단톡방에 올리며, 나는 아주 뿌듯해했다.
3. LA 음악 캠프 :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면 시차 적응이 그렇게 어려운 줄도 모르고, 도착하자마자 음악 캠프를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피곤하고 졸린 일주일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졸음 참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몇 수업은 참석을 못하기도 했다.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약도 챙겨줬다. 애써 예약해 둔 공연도 다음날 컨디션 관리로 취소해야 했다. 돈만 날리고, 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오케스트라 콘서트였는데 아직도 못 봤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 이걸 다 커버했다. 마지막 날 무대를 마치고, '지금까지 한 무대 중에 단언컨대 가장 행복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러하다.
하루종일 기쁘기만 한 날은 존재할 수 없다. 그건 단 3시간도 어렵다. 누가 발을 밟고 그냥 지나가도 기분이 나쁠 것이고, 음식을 시켰는데 한 숟갈 뜨고 못 먹어도 화날 것이다. 기억은 내가 중요하게 강조하거나 반대로 지워버리는 그 편집에 따라 달라진다. 외국 나가서 뭔가를 이뤘던 날이라고해서, 행복하기만 했던 게 아니란 걸 안다. 지금은 돌아와 한국이기 때문에, 그 아쉬움에 좋았던 것이 더 부각되고 힘들었던 건 가려진다. 그 사실을 늘 기억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