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나는 보컬 석사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보컬 레슨이 있었다. 한국에 노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영국 가서 꼭 보컬 멘토가 생기기를 바랐다.
그런데 학교에 보컬 레슨 담당 선생이 딱 한 명이었다. 보컬 전공하는 학생은 전부 한 선생에게 레슨 받다니, 좀 의아했다. 원래는 학생마다 추구하는 장르와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레슨 교수를 배정해 줘야 맞다.
나랑 레슨은 안 맞았다. 영국 오빠도, 그 선생이 선생으로서 자질이 좀 아닌 거 같다고 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 도움을 받았던 점이 있다. 당시 나는 거의 매주 자작곡 썼다고 가져갔다. 그렇게 자작곡 썼다고 가져가는 거 자체가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자주 곡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편안하게 자작곡을 들려드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문득 내가 한국인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했을 때, 말 끝나기가 무섭게 "DON'T FALL IN LOVE!!"라고 하셨던 기억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난다.
2013년 11월... 12월... 2024년 1월... 2월... 그 시기를 그 선생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따뜻하게 보냈다. 내가 완전 고통스러워하던 날에는, 내 표정만 봐도 노래할 상태가 아니니 '오늘은 노래하지 말고 얼른 얘기 들어보자'하고 의자 가지고 내 앞에 앉으셨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보컬 레슨 시간인데 내 얘기만 한참 하고 간 날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 돌아간 후였다. 내가 아무리 도중에 한국에 갔어도 그렇지, 내가 보내는 메일에 답장도 안 하고, 졸업 공연도 완전히 혼자 준비했다. 엄연히 아직 학생인데, 내가 졸업 공연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나 반드시 체크해줬어야 한다. 이건 마치 논문 준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한 셈이다. 그런 교수가 어딨나. 무책임했다. 준비가 잘 되어가는지, 잘했는지 한 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른 전공 같은 경우, 건강 상의 이유로 논문을 한국 돌아가서 쓴다고 하면, 교수가 그래도 온라인으로 계속 봐주지 않겠나. 난 그런 게 일절 없었다. 열받을만했다.
지난 12월도, 5월도, 영국에 갔지만 계속 마음이 꽁해있었다. 작년 7-8월 그 엄청나게 힘들던 시기에, 담당 교수로서 일을 하지 않았으니 괘씸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계속 안고 살아가는 건, 나를 갉아먹을 뿐이다. 분명 돌이켜 생각해 보면,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영국 갔을 때, 인사하는 것이 맞다. 마치 내가 작년 12월에 누군가에게 졸업 축하한다는 카톡을 먼저 보냈던 것처럼.
그래서 1년 만에 처음 메일을 보냈다. 내 이름을 보고 당황하실지 어떨지 모르겠다만, 다음 달에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용기가 좀 필요했는데, 아무나 할 수 없는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