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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째 살아야 될까요

by 이가연

생각해 보니, 영국에 살 때도 이 친구가 약속을 못 지켜서 열 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차라리 한국과 영국, 이렇게 떨어져있는 게 친구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당한 게 많아서 한국인은 10분만 늦어도 집에 갈 거라고 벼르고 앉아있는데, 아무리 영국인이라해도 이틀 연속 2시간과 1시간 반 지각은 많이 참은 거다... 게다가 나는 여행 중이니 일정이 싹 다 꼬인다.

토토로 연극 보느라 이미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만나서 그 감정이 내려간 뒤였다. 원래는 그렇게 지각하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사람 얼굴을 쳐다보길 싫어해서 되게 곤란해진다. 아무리 그뒤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는 걸 알아도,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을 극혐하는 걸 어떡하나.

하지만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지각해서 당장 얼굴 보면 어차피 내가 극혐하는 기분에서 못 벗어나올 걸 안다면, 나중에 만나야 된다. 나는 외출이 귀하다. 옷 입고 그렇게 사람 만나는 게 몇 달에 한 번 있는 일이다. 그러니 아까워서 그냥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차피 지금 얼굴 보면 나 똥 씹은 표정에서 못 나온다'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한두 시간이라도 나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물론 그 사람이 지각하면서 자기가 먹고싶은 거 다 사주겠다고 하면 괜찮다. 왜 다들 그 간단한 걸 안할까.

이 친구가 영국에 없었으면 영국 오지도 않았다. (영국 오빠가 지금 베트남에 있다.) 나의 유일한 영국인 친구이자, 또래 친구다. 일본인 언니도 40대고, 한국엔 4050대 지인만 있다. 이렇게 소중해야 마땅할 조건에도,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이 그런 걸 보면, 가뜩이나 애증 관계인 한국인은 얄짤 없어진다.

이제 진짜 진짜 진짜로 또래 친구 없다고 불만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ADHD인들에게 당연한 씻는 것도 힘들고, 밥 제때 챙겨먹는 것도 힘들고, 5천 보만 걸어도 발 아파서(심한 평발도 아니고 평발 깔창도 있는데 이 정도면 감각 예민), 예측 불가한 사람까지 신경 쓰기 불가하다. 보아하니 4050대는 젊은 애가 열심히 살아서 귀엽게 잘 봐주는 거 같다.

걔는 그냥 애늙은이 같았는데 보고 싶다. 그럼 그렇지. 이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어쩔 수 없다. 한국인 극혐이다, 20대 극혐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원래 같았으면 극혐이었어야 마땅한데 전혀 아니었던 걔가 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이 극혐이 좀 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와 맞는 사람들을 좀 만나야하는데, 작년이고 올해고 찾으면 찾을수록 더 극혐만 가속화되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영국 와보니 알겠다. 상대적으로 불편감이 낮은 영어도 이러면, 한국인은 가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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