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영국인 친구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답장이 안 왔는데 100개씩 남겨두긴 어려웠다. 많아야 50개 정도다. 한국인은 편하게 30개도 해본 기억이 잘 안나니까 얘는 편하게 느낀 거다. 예전에 동생이 "답장도 안 했는데 계속 오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라고도 하고, 친해졌다고 생각한 한국인에게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아냐고 들은 말이 가슴이 못 박혀있다. 걔가 말한 채팅창이 니 일기장인 줄 아냐는 뭐 말할 것도 없다. 그걸 다 겪었음에도, 이 분은 300개든 500개든 천 개든 전혀 상관 없다. 그래서 친구가 아니라 거의 신부님으로 느끼고 고해 성사하는 기분인 것이다. ADHD는 불가항력인데, 이 분은 주변이 싹 다 ADHD인지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 말고도 심지어 유부남, 유부녀도 그리 몇백 개씩 남겨두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게 내가 폭발하지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영국인 친구도 부족했다. 영국 오빠는 늘 나에게 말해줬다. 얼마든지, 언제든지 편하게 하라고 늘 해주고 읽으면 흐뭇하다고 해주고, 나도 그 과정을 몇 달 거쳐서 작년 5월 쯤부터 이리 되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말해줘서, 이렇게 인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내가 안정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어요. 그런 사람만 친해질 수 있는데 돌아버리겠다.
영국인 친구마저도 부족했다는 게 안타깝다. 얘는 진짜 다 말할 수 있는, 편한 축이라 생각했는데, 얘마저도 그때그때 모든 말을 할 수 없었으니 뭔가 가슴에 쌓여서 폭발한 것이다. 얘마저도? 얘가 유일한 또래 친구이다.
그 정도 친한 친구 있는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래서 이 정도도 진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모든 말을 할 수 없는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말 많이 하는 다른 또래 친구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친구가 있어도, 내가 연락했을 때 간단하게 답장하는 정도라, 나만 연락하는 것에 벌써 지쳐서 몇 달 있으면 끝난다.
영국 오빠 같은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친한 친구라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방어해야한단 생각에 슬프다. 그건 한국인 기준에서, 애인이나 가능한 레벨이다. 하물며 정신과 의사도, 친구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기엔 눈치가 보이니 상담사가 도움이 된다했는데, "저 전혀 눈치 안 보이는 한 명 있는데요." 했다. 걔 얘기 골백번도 더 했다. 하루 세 번 1년 반이다. 숨 쉬듯 "걔 보고 싶다"해도 한 번도 눈치 보였던 적이 없다.
이번 일로, 진짜 저 영국 오빠 같은 사람이 아니만 친한 친구가 불가하단 걸 깨닫고 한숨이 나온다. 저 오빠가 지금 베트남 가서 한 달 동안 3번 정도 연락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