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이야기

by 이가연

소비 쿠폰 사용하러 독립서점에 갔다가, '여성들의 자궁 이야기 : 임신 출산은 빼고' 책을 발견하여 부분부분 읽었다.


p57 그리고 또 하나 없어진 건 내 판단을 의심하는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미워질 때, 혹은 화가 날 때마다 생리 때문에 이러는 건지 의심하곤 했다. 하지만 생리를 안 하는 지금, 더는 내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미워지는 건, 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화가 날 일이 생긴 것이다. (중략) 친구들에게 생리 중단 방법을 알리고 권유하지만 이를 받아들인 친구들은 많지 않다. 몸 안에 기구를 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불편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IUD 10년 차에 접어든 내 몸에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문제가 생긴 일은 없다. 오히려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대체 자연적이라는 건 뭘까? 자궁에 수정란을 착상시켜 아이를 낳고 길러내는 삶이 자연적일까?

나 역시도 몸에 장치를 넣어서 생리를 멈추게하는 방법을 몇 년 전에 다 고려했었다. 결혼 안 했으면 자궁이 아니라 팔에 넣는 걸 추천한다는 것도 다 알았다. (새삼 다시 느끼는 거지만, 단순히 아이를 낳지 않는 것만 가치관이 똑같아선 결혼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치관이라는 것이, 하나가 맞으면 다른 것도 비슷할 확률이 높다. 내 주체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매력으로 느껴질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는 생리통으로부터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두 달에 한 번 하던 영국만 아니면, 딱 하루 약 1-2알이면 괜찮았다. 애드빌만 먹으면 약이 잘 들었다. 영국에서만 생리통이 비정상적으로 심했다. 그것이... 영국 가는 걸 주저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땅이 몸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 아닌가. (남자친구도 아닌데 그러면 안 됐던 거지만, 걔한테 거의 울려고하며 생리통이 심하다고 전화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는 진짜 생리통을 영국에서만 그리 심히 겪어서다. 미안하다.)


이것이 2021년 생리 달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ADHD가 늦게 발견된 건 인내심이 높아서도 있다. 저러고 어떻게 살아요? 살면서 내가 생리한다고 예민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저 때는 생리를 8-9일 하는 것도 짧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8-9일도 긴 거다. 지금은 5-6일 밖에 안 한다.

혼자 산부인과는 7-8군데는 가봤었고, 아무데도 그냥 호르몬제를 먹으라는 말밖에 안 하고 도움이 안 되었다. (어차피 애 낳을 생각이 너무 확실히 없는데 자궁 적출하면 안 되냐고 했다가 정신 이상자 취급도 받았다.) 저러던 이유도 못 찾았다. 스트레스는 다른 년도에 더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한의원을 찾아 한약을 먹기 시작하니 괜찮아진 기억이 있다. 몸이 차다고 했다. 호르몬제는 정말 딱 먹을 때만 호르몬 컨트롤을 시키니, 치료가 아니다.

시술을 몇 년 안에 필히 할 거 같은데, 지금은 아닌 거 같다. 첫째, 부정출혈에 대한 나의 혐오도가 아직 극심하다. 저 달력을 보라. 또 저러고 싶겠는가. 시술 후 저런 부정출혈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후 진짜 싫다. 살면서 해본 시술이고 수술은, 렌즈삽입술 뿐이었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밤에 빛 번짐 정도였다. 정말 딱 몇 달 동안 밤에 빛 번짐이 있었다.

p68 생리량과 생리통이 줄어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으면 5분의 1정도의 확률로 무월경 상태에 들어선다고도 했다. 생리를 안 할 수도 있다고? 신이시여! 그리고 바로 천국이 찾아왔을까? 아니다. 임플라논은 역사가 길지 않은 시술이다. 임플라논의 특징과 장단점을 정의하기에는 아직 사례 수집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할까. (중략) 부정 출혈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지 모른다. 출혈량은 어느 정도일지, 그 기간은 얼마나일지, 동반되는 통증은 없는지, 부정 출혈인지 평소보다 빨리 시작된 생리인지 여부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등등.

둘째는, 생리가 사라지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거 하나 바라고 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열받아 디진다. 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하는 거면 이미 했다. 솔직히 그동안 연애를 못 한 게, 아직 시술 못 한 이유다.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피임 효과도 같이 기대하고 예비 남편이 돈을 지원해주면 바로 그 순간에 날짜 잡을 것이다. 아, 너무 기대 된다. 그런데 만일, 항상 생리통이 심했으면 아마 내 돈 백만 원이 들더라도 진작 했을 거 같다.

p71 아예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낫다. 하지만 솔직히 '완전한 해방'은 아니다. 만일 생리통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찾는다면, 아예 생리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꼭 시도할 것이다. 대출이라도 받아서 할 생각이다.


나는 번식과 생산을 할 계획이 없는데... 생리통이 더 억울하고 분한 이유다. (중략)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스스로 임신과 출산에서 벗어나기를 '택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P.S. 이 글을 발행하려고 보니, 태그가 자동으로 '임신', '출산'으로 뜬다. 한숨 나온다. '여성'을 검색해도 연관어가 '여성의류' '여성패션' 밖에 안 나온다. '여성인권' 이런 거는 글을 안 쓰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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