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국 가기 전에 감정적으로 사기꾼에 크게 당했다. '경제적 손해가 없었는데 그게 어디야'라고 하기에는, 나는 원래 부모 돈이 아닌 이상, 내 돈이란 건 별로 없어봤다. 날릴 돈 같은 것도 없다. 대신, 내 감정은 참 무한하고, 남들보다 감정 소모를 심하게 하는 편이다.
그때 사기꾼을 걸러내는 스킬을 터득했다. 가장 훌륭한 것은 직감이지만, 그 직감이 가끔 맛탱이가 갈 때가 있다.
대학에 입학했던 2016년부터 무수히 많은 오디션과 각종 기회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미친듯이 두드려도 문을 안 열어주는 판국에, 누가 먼저 문을 열어준다면 당연히 처음엔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현실성'을 챙겨야 한다. ADHD인들 나이브해서 누구 말이든 다 믿는 게 디폴트인 거 알지만, 그 2023년 사기꾼에 당한 이후로, 누가 기회를 제안한다고 다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걸러냈던 것이, 작년에 있었던 제안이었다. 말만 들으면 너무 좋은 기회이고, 딱 나에게 맞는 거 같아서 좋아했는데, 미팅 끝나고 집에 와서도 그래서 나한테 돈을 얼마 주겠다는 건지 몰랐다.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어보니, 내가 봤을 때 소비자는 1시간에 10만원은 지불할 거 같은데, 나에게는 시간당 2만원을 얘기했다. 내가 더 희망할 거 같아서 2만원은 좀 그렇고 더 상의해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만일 영국에 남아서 일하게 되면 시간당 최소 5-6만원 받는다며 잘라냈다. 그때는 영국에 남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엄청 예의 바르다. 말투만 들으면 아주 상냥한 사람이기 그지없다. 그런데, 순간순간 갑자기 "응?" 싶은 말이 분명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분명 몇 초의 티가 난다. 100%면 그건 메소드 연기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나의 신생 채널이나 마찬가지인 타로 채널을 통해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이 채널은 작년 여름에 개설하여, 올해 제대로 영상을 많이 올리기 시작했다. 구독자수도 이제 겨우 5백명을 넘었다. 그런 채널에 제안이 온 것부터 신기했다. '제안이 온 곳 이름+실체'를 검색해봤다. 역시 제안을 받아들여도, 한달 수익이 내 음원 수익이랑 맞먹을 거 같다. 만 원도 안 나올 거란 뜻이다.
내 타로 채널을 보고,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제안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만일 노래 채널을 보고, 노래를 통해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클래스를 하자고 제안했으면 오히려 더 넘어갔다.
무엇보다, 그 제안 메일이 AI로 쓴 티가 너무 났다. 부끄럽지만, 나는 AI 구분 잘 못하는 거 같다. 일단 다 믿고봐서 그런다. 그런데 그런 나마저도, 메일이 AI 티로 거부감이 느껴졌다. 내 프로필에 있는 단어들을 엮어다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문장을 구성했다.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내 직감이 발동했다. 특별히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AI를 돌려서 아무나 걸리라고 막 뿌린 거다.
ADHD인들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본인이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믿고 다 오픈하는 게 디폴트값이라고 한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다. 20대 초반에는 신천지, 도를 아십니까, 다단계 이런 벌레들이 얼마나 꼬였는지 모른다. 20대 중후반 넘어가니까 이제는 더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신천지는 어차피 내가 어지간히 성경을 극혐해서 안 걸려들었다. 진짜 교회 사람이 교회 가자고 해도 치를 떨 판에, 어찌 신천지에 넘어갔겠는가. (다만 이들도 감정 소모는 많이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만나야 티가 나는데, 나는 이미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해버리면 그 배신감은 말도 못 했다. 한두번 만나고 연락 두절되었던 사람들 중에, 내가 교회 극혐하는 거 확인하고 연락 두절된 신천지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오빠에게도 나는 세 번 만날 때까지 친구라고 생각 안 하기로 마음 먹어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건 아빠 말이 다 맞았다. 신천지 때는, "그런 사람이 너를 왜 만나."했는데, 역시 신천지였고 사칭이었다. 2023년에는 "지금까지 안 한 것도 아니고 다 했는데도 기회가 안 왔는데, 갑자기 그런 좋은 기회가 왜 와."했는데, 진짜 그 사람도 사기꾼이었다. 역시 2차 소비 쿠폰을 못 받는 고액자산가의 말은 다르다. 아, 같은 ADHD지만 특히 내가 나이브한 ADHD인 거 같다. 아니다. 저 분이 고액자산가라서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수십년간 단련되어 그런 것이지, ADHD 특징에 분명 있는 부분이다.
나도 어차피 90% 복제품이라, 지금은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그런 피도 눈물도 없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현실적으로 내가 확실하게 얻는 것이 무엇인가.
- 내 직감은 뭐라고 말하는가. 분명 상대의 말투는 아주 예의바른데, 뭔가 이상하거나 쎼하진 않는가.
- 주변에 고액자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라면 뭐라고 했을지 생각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