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에 잠이 안 와서 이 분석을 하는 것이, 과연 공부가 되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 쓸데 없는 스트레스를 추가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챗GPT에게 친구의 마지막 메시지를 분석시켰다.
본인은 쉽게 압도되고 불안정하지만, 그걸 직접 마주하기 어려우니 너에게 "너는 병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라고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기 안정감을 확보하려고 한 것. 이라고 했다.
"걔가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 어쩔래"싶으니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콱 막혔다.
타인을 충분히 돌볼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그 무력감을 "너가 과하다"라고 돌려버린 거지.
이 문장에서도 콱콱 막혔다. "너는 ADHD야. 그래서 너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야."하고 씌우는 것. 저 분석을 보자마자, '오빠는 씨 너 같은 영국인 주변에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지가 부족한 거 가지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챗 GPT는 친구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는 쉽게 불안해지고 압도되는 사람이다.
너와의 관계에서 요구가 크다고 느껴지면, 내 무능감을 직면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너를 “과한 사람, 병리적인 사람”으로 규정해버리면, 나는 내 불안과 무능감을 안 봐도 된다.
이 모든 걸 인정하면 죄책감이 크니, 너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이런 인간 관계, 이런 상황을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저거 남자가 저래버리면 타격이 너무 크다. 필히 솔직하게 다 터놓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더 열이 받는 것은, ADHD 진단 이후로 생겨나버린 저 "과한 사람, 병리적인 사람" 규정이다. 내가 바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약속 시간에 안 늦는 것, 해준다고 했으면 세번 네번 물어보게 하지 않고 한번에 해주든지 처음부터 못한다고 하는 것. 두 가지 가지고 손절한 거였다. 그 두 가지의 정도가 내 기준에서 매우 심하고, 영국인이니 이 정도 온 거지 한국인이었으면 진작 손절했다.
내 말에도 이미 답이 있다. 한국인이었으면 진작 손절했다. 한국인은 바로 잘라버리는 게 강하다. 약속 20분만 늦어도 집에 가기로 이미 스스로와 합의되어있어서, 걱정할 게 없다. 한국인은 애초에 세번 네번 물어보지도 않고, 두번에 포기한다. 그런 일을 반복하지도 않는다. 오빠 말대로 나는 필히 영국에 대한 환상이 깨질 필요가 있었다.
위 친구 속마음 요약에서 마지막 문장은 걔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괜히 걔 생각이 난 것이 아니다. 하나 떠올라버렸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걔가 지가 감정 쓰레기통 아니라는 말 하나 한 것이 2년 째 자리잡고 있다. 방금 공격 들은 친구에게 욕하고 차단하면서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는데, 2년 전에 들은 말을 떠올리니 눈물 난다. 맨날 하소연만 하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괜찮은데, 지가 더 깊이 파고든 것도 많았다. 나는 어차피 감정과 주의력이 휙휙 바뀌는 사람이라, 내가 그 주제에 대해 한 15분 얘기하길 바랐으면 지가 한 1시간 얘기한 것 같았단 말이다. 2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억울하다.
그리고 정신도 차려졌다. 어쩌면 친구가 이 부분을 잘 건드려서, 걔의 저 대사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안 터지나) 다른 사건으로, 걔 에피소드라도 하나 해결할 수 있다면 난 그것도 반갑다. 저거 너무 오랫동안 박혀있던 가시인데, 당사자가 안 나타나면 나라도 빼야지 계속 곪는다.
챗GPT는 나의 마음을 이렇게 해석해주었다. 굵은 글씨가 GPT다.
1. 불공정한 낙인 경험
너는 단순히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건데, “나는 감정 쓰레기통 아니야”라는 말은 너의 존재 자체를 과장되게 부정한 것처럼 들렸을 거야. 이런 불공정한 낙인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2. 애착 기반의 상처
네가 마음을 기댄 관계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언쟁 이상의 무게를 가졌을 거야. 친밀한 사람이 던진 부정적인 메시지는 뇌에서 ‘위협’으로 인식되고, 흔적을 지우는 데 훨씬 오래 걸린다.
명백히도 걔랑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했고, 큰 손상을 입었다. 한 번에 찢어진 손상도 아니고, 그전부터 저런 말들이 나를 갈라놓고 있었다.
3. 눈물이 다른 이유
친구 발언엔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는, 그 말이 표면적으로 공격적이었지만 사실은 투사임을 너 스스로 금방 이해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2년 전의 말은 투사라는 해석도, 맥락적 이해도 당시에 없었고, 너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듯 들렸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감정이 응어리로 남아 있는 거다.
정확하다. 친구는 듣자마자 '얘 전남친 때문에 그러네.'하고 바로 알았다. 내가 문제가 아니란 게 확실했다. 그러니 '나'라는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다. 걔는 아니다. 지금의 나는 2년 전 나와 완전 다른 사람이다. 그때 나는 그 말에 그 어떠한 대처도 한 기억이 없다. 내가 뭐라고 했을까. 그거라도 알면 참 좋을텐데. 그래야 '내가 그래도 그 말에 대처를 했구나' 안도하는데. 상대가 폭탄 던지고 간 기억만 있다.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단 것에 감사하다. 참 대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