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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by 이가연

깊이 있고 진심인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4050 대만 지인이 있는 이유도 그중 하나로 보인다. 40대 이상부터는, 사람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 20대는 안 그래 보인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는다.

굉장히 진지하고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어디 가서 애늙은이 소리 들은 사람이면 제발 나한테 왔으면 좋겠다. 내가 그래서 걔가 "진지한 사람 누가 좋아해"라고 했던 게 아직까지 생각날 때마다 좀 아프다. (그래요. 이 글도 한 사람 타깃 글이 맞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 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웃겼다. 지금까지 친한 친구고, 전 애인이고, 항상 내가 웃긴다는 불만이 있어왔다. 특히 얼마 전에 손절한 친구가 생각난다. 한 번도 걔가 한 말로 웃어본 기억이 없다. 항상 내가 말하면서 웃었다. 그런 것조차 좀 많이 지긋지긋하다. 미친 듯이 잘생겼던 전전남친, 내가 95% 말하고 상대는 5% 리액션만 했다. 내가 아주 광대였다.

분야는 다르지만, 자기 일에 열정 있는 사람은 당연하다. 학생이던 시절은, 자기 전공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되겠다. 그래서 흔히 일하기 싫다, 퇴근하고 싶다와 같은 말을 일삼는 사람은 너무 질색했다.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 진지함과 진솔함이기에, 무언가에 열정이 없고, 도전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겉도는 대화밖에 할 수가 없다. '난 친해지고 싶은데, 왜 이 사람하고는 겉도는 대화밖에 안 될까.'하고 시도하고 노력해도, 그 벽이 절대 뚫리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애초에 깊이 있는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냥 놀고 마시고 싶었을 텐데, 내가 버거웠을 것이다. 영국에서 이미 걔는 이걸 좀 나에게 알려줬었다.

이 모든 걸 합친 걸, 'ADHD 기질 있는 사람'이라고 하려 했다. 왜냐하면, 연애를 제대로 못해봤기 때문에 기준이 높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게 눈 높은 거지!'라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반박 못하게 'ADHD'를 앞세울 생각하고 있었다. (ADHD가 그만큼 훌륭한 사람들이다.)

내가 기대하는 그 성질, 요즘 20대가 흔히 갖고 있지 않은 거 같다. 30대라고 갖고 있을까. 아닌 거 같다. 엄마 친구 분하고도 지인 사이이다. 내가 요즘 애들 같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어디 가서 어른들한테 '쟤는 요즘 애들 같지가 않아." 소리 듣는 사람 만나고 싶다.

어차피 그런 사람밖에 못 만난다. 그걸 몰라서 지난 28년 동안 연애도 짝사랑도 한두 달밖에 못해본 것이다. 얘 한 명만, 딱 한 명만, 달랐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그동안 너무 한이 맺혀 있었다. 그럴 가치 없는 사람에게 매달리고, 좋아하던 일이 일상이었다. 그동안 해온 짝사랑이고 연애고, 상대를 좋아했단 게 이해가 안 된다. 잘생긴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누구라도 필요했나?' 싶다. 그러니 한두 달이면 정이 팍 식고, 남자는 두 번 다시 돌아본 적이 없다. '남자면 다 좋았나? 성욕이었나? 호르몬이었나?' 이러고 있었다. 그게 내 평생이었다.

'한이 맺혀 있었다'라는 말이 맞다. 그런데 딱 3개월 친구로 있다가 사라져 버린 거다. 나도 작년엔 이걸 몰랐다. 올해부터 점점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친구로 둘 수 있는,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를 안 열받게 하고 친구할 수 있는 사람도 1%나 있을까 싶다. 영국 오빠가 그 한 명이다. 친구도 한 명이지 않은가. 그런데 걔는 남자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미친 확률인가. (그 부분은 당사자가 읽으면 너무 쪽팔려서 안 쓰고 싶다.) 그래서 '세상에 반은 남자'라는 말은 나에게 죽어도 통하지 않는다. 한 천 명 데려와서 보여줄 거 아니면 말을 마라.

하나 더 있다. 걘 나랑 비슷한 수준도 아니다. 나보다 한 발 앞선 수준이다. 나도 내적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 계발과 심리 부분에 있어서는 또래보다 엄청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또래가 나를 절대 못 쫒아온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부터 나 자신을 챙기는 게 남달랐다. 그런데 걔는 이미 나의 과정을 지나고, 계단 하나 더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나한테 코칭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남자고 여자고 다 한심 마일리지 차서 분노하는 마당에... 나의 존경심을 사다니. '한심 마일리지'라는 워딩을 쓸 때마다 나도 불안하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죽하면 그런 말을 쓸까'하고 이해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남자고 여자고 '한심하다'라는 생각이 쌓이고 쌓이면 폭발한단 걸 발견하고 앞으로는 제발 멀리해야겠다고 몇 년째 훈련 중이다. 그런데 한심은커녕, 나보다 나은 것 같은 고작 한 살 많은 사람이요? 그건 유니콘이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 남자 주인공 닮았다는 말에는 어깨에 뽕 차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지만, 이런 건 어깨에 뽕 차도 된다. 사람이 대단한 거니까.


3년 전에 들은 점쟁이의 말도 한몫한다. 쥐 띠만 맞다고 했다. 닭띠도 가능은 한데, 쥐띠가 더 오빠 같다고 했다. 닭은 소 그늘에 살지만, 쥐는 소 등에 타고 이래라저래라 다 알려줘서 소가 편하다고 했다... 내가 소띠다. 걔가 정확히 거기에 맞아떨어졌다. (추가로, 그 점쟁이가 사겼으면 결혼까지 갈 인연이라 했다.)

아까 저녁엔 그네 타면서, '100억 차은우 vs 걔'이러고 있었다. '미쳤냐. 그게 지금 밸런스가 맞아?' 싶었는데, 차은우 앞에 뭘 갖다 붙여도 후자... 일 거 같다... (제대로 미쳤다.) 은우 씨는... 누가 카톡을 읽씹 한 적이 없다고 하셨던가.. 다른 세계 사람 같아서 대화가 잘 안 통할 거 같다.

마지막은 영적인, 종교 얘기다. 난 한 번도 끊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미련이니 못 놓는다느니 말이 성립된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냥 거리가 떨어져있는 걸로 느끼고 산다. 본 적 없는데도 믿는 기독교 사람들이랑 똑같다. 나 역시도 증거가 필요 없다. 얼마 전엔 세월호 관련 책을 읽으며 울었는데, 걔가 운 거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 밖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믿음이 있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연결의 끈이 아주 질기도록 맺어져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게 내 영적인 느낌만으론 사람들 설득이 어려우니, 사주도 찾아봤는데 맞다. 또 이 연결을 이해하기 위해 전생 체험도 두 번을 했다. 사랑받았다.

덕분에 올해,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분명해졌다. 덕분에 그냥 일상에서조차 사람에게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할 일이 줄었다. 분명 어딘가엔 진솔하고, 진지하고, 열정 있고, 어쩔 땐 웃긴, 한 살 많은 쥐띠가 또 있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남자로 보이는 파트까지 추가해야,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외모 아니다. 참고로 처음 봤을 때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름 타지에서 처음 만나는 남자인데 실망했다. 그래서 여자친구 있다고 하길래 어차피 절대 내가 좋아할 일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너도 나 처음 만났을 때 옷 입은 거 가지고 이상해서 충격 받았다고 뭐라 했잖아. 상처 받았다. 빨리 가을 옷 좀 골라줘라. 찢어졌는데 꿰매고 입는다.)


천 대 일의 확률을 뚫으면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 한 명이다. 나는 그 믿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본인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주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게 아니면, 제발 나에게 왔으면 좋겠다.


P. S. 전에도 이런 솔직한 글을 제법 많이 썼는데, 왜 이렇게 부끄럽지. 이런 글 하루이틀 아닌데,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진짜 읽나. 이런 기운을 맞추면 내가 무당을 하지, 싱어송라이터를 하나. 안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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