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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 말고, 나부터

by 이가연

여의도 역에서 걸어서 집에 가는데, 어떤 남자가 엄청나게 큰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쩔쩔매는 걸 봤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몰라 지나쳤다. 나는 빠르게 걷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찰나다. 그러다 한 3초 뒤에 뒤돌아보니, 진짜로 혼자 그 두 개를 끌려고 하고 있어서 "도와드릴까요?" 했다. 그랬더니 "어..." 하시길래 "Do you need help?"라고 바로 바꿨다.

어두워서 외국인인 줄 몰랐다. 아니, 안 어두웠어도 모를 법한 것이, 중국인 같았다. 캐리어 하나를 버스 정류장 있는 데까지 끌어드렸다.

그러고 나서 참 뿌듯했다. 영국에서 좋은 거 배워 온 거다. 영국인들은 내가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꼴을 못 보는 거 같았다. 다 도와줬다. '한국 사람들이면 도와줬겠냐'하며 툴툴댔지만, 나는 어떠한가. 나도 그동안 여자, 아이, 노인만 돕지 않았을까. 남자면 원래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지나쳤다.

그런데 뒤돌아서 다시 갔다. 자꾸 '한국 사람들~'하게 되는 건, 사실 나를 욕하는 일이다.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싫은 것이다. 이렇게 바뀌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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