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다.
20여 년 전, 내 상사가 등을 떠밀어서 보낸 교육이 바로 [가정폭력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이었다.
교육이 점점 무르익어 가면서 나는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잊혀졌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럼... 나도... 피해자였네?'
현실을 자각하고 난 뒤부터 한동안 교육이 가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자라면서 잊고 지냈던 기억 저편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끌어당겨 모으니, 나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것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서 갑자기 추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봉인되었던 슬펐던 기억들이 고개를 처들고 들이밀면서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하니 그럴 수밖에...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몹시도 힘들게 하였다. 바람도 피웠고, 어머니를 때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은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후닥닥 흩어지곤 하였다.
아버지의 주사에는 어머니를 향한 험담과 끝이 없는 잔소리, 그리고 손지검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 형제들은 겁에 질려 떨고 있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큰언니는 그런 아버지에 맞서서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곤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김없이 멍자국이 있었고, 몹시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 날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였고 두려워하면서 증오하기까지 하였다. 나의 십대시절은 그렇게 암울함의 연속이었다.
큰언니가 직장 일로 집을 떠나 있게 되자, 그 몫은 자연스레 오빠가 하게 되었다. 한두 해를 거듭하며 오빠가 점점 남자가 되어가자 아버지는 폭력을 멈추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피해자의 헝클어진 머리와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 폭력으로 한쪽 눈이 부은 얼굴을 보니, 순간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슬픈 모습과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보통 가정폭력은 경제적인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폭력으로 확대되어 신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피해자는 여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오빠가 피해상황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 직원의 안내로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를 방문하신 분이었다.
상담을 받는 내내 눈물 지으면서 하소연도 하셨고, 답답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다. 한편으로는 오빠가 대신 신고를 해 주셨기 때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다. 이곳에 오면, 상담도 받으실 수 있고 법률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 드렸다. 찢어지고 부러진 상처도 치료받을 수 있고, 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대해 정신과 지원 등 피해에 따라 필요한 치료와 지원 등의 의료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드렸다.
피해자 본인이 원하시면, 가정폭력상담소를 연결하여, 지속상담을 받으실 수 있게 안내해 드리며, 법률자문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리기도 한다.
가해자인 남편에게는, 경찰에서 임시조치로 보통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로부터 퇴거, 주거 또는 직장 등에서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긴급 임시조치 또는 응급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약칭: 가정폭력처벌법 )제29조(임시조치) 참고)
가정법원의 재판을 통하여 가해자에 대한 보호처분 결정이 내려지게 되면, 가해자는 접근금지와 사회봉사명령, 행위자 교육 등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 명령을 어기게 되면 벌금형 또는 실형을 살게 된다.(제63조(보호처분 등의 불이행죄 참고)
피해자는 피해자 보호명령 청구에 따라서,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가해자가 이를 위반하게 되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더 이상 함께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는 합의이혼을 신청하게 되고 이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신고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가정폭력이 드물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남의 집 가정사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숨겨진 (있지만 말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상담과 치료가 웬 말이냐, 그런 것도 없었다.
아직도, 신고하는 피해자보다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고를 꺼리는 경우는 '가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생활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쉬쉬해서 묻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폭력'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맞아야 할 이유가 없고,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도 넘은 감정의 기준일 뿐 아니라, 망언이다.
감히 누가 사람을 패는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몰지각한 말 안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눈곱만큼도 없다.
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 평생~ 그것이 피해자의 아픔이며 고통이다.
가정폭력피해자 지원을 위한 교육 과정 중에 [피해자 쉼터]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맨몸으로 탈출(?)한 젊은 피해자를 만났었다. 미안하고 고맙게도 피해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피해에 대해 낱낱이 증언해 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젊은 피해자는 신혼 때부터 남편의 손지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도, 형제자매들로 부터도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남편한테서 뺨을 맞은 그 다음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남편을 마주하였는데, '미안하다'라고 하며, 사과와 용서의 제스추어를 보이는 남편의 행동에 그간의 아픔과 충격을 자신만 잊으면 되겠구나 생각하여, 묻어버리려 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라고 하였다. 갈수록 남편의 폭력은 강도가 심해졌고, 비가 엄청 내리던 그 날은 맞다가 맞다가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이 잠든 사이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체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다고 말하였다. 몇 주가 지났음에도, 그 젊은 부인의 드러난 팔과 다리에는 각목으로 맞아서 피멍이 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충격에 빠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되도록 사람을,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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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그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남편으로 부터 피신하여 갈 곳이 없어진 피해자는, 쉼터에 입소하여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재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원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위한 법률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취업교육을 받으면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두고 온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또는 남편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 까, 또다시 '미안하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번 시작된 폭력은 멈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피해자 중에는 경제적 독립이 어려워서 참고 살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는 자녀들의 장래와 결혼할 때, '이혼가정'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여 남편에게 돌아가기도 하였다. 사정은 다 다르고 이유는 많다. 요즘은 자녀들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대가 많이 달라지고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폭력은, 상해나 파괴를 초래하고, 심하게 격렬한 힘과 권력의 행사로 상처가 난 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폭력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신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언어적 폭력, 성적 폭력, 경제적 폭력, 방임, 유기 등 타인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어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행위가 폭력의 범위에 들어 간다. 내가 만난 어떤 피해자는 남편으로 부터 심한 욕설과 의심, 경제적 폭력을 당한 케이스였지만, 그것이 폭력인지는 몰랐다고 말 하였다.
일부 가해자들은 신체적 폭력으로 흔적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학력이며 상당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가해자 중에는 교묘하게 정신적으로 학대하여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가해자 들 중에는, '내 마누라 내가 패는데, 웬 참견이냐!'라고 한다는데, 아직도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 마누라, 내 아내... 소유격인 내(나의) 마누라라고 해서 아내가 소유물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은 각자 독립된 인격체이므로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내', '나의' 라고 하는 것은 '내 생활 영역 또는 같은 생활 영역 안에 ' 의 의미이지, 소유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마누라도, 아이도 소유물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동학대 피해자 신고가 접수된 경우에도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들도 '내 새끼 말 안 들으면 때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아이(자녀)가 부모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하기도 한다.
어떤 남자들 중에는 구약성경 창세기(3, 21) 부분에 기록된, 하느님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대목을 인용하여 '소유물'이라고 해석하는 멍청이도 있지만, 그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내 몸의 일부로 여자를 만들었으니, 내 몸처럼 소중히 하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은 힘이 있는 자가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압하는 행위이다.
나도 폭력을 당한 때는 약하고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이 없는 사람은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 힘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만은 아니며,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와 판단력, 정보력 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힘이 없는 아이와 여성들이, 또는 노인들이 맞으며 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신변에 위험이 느껴진다면 신고해야 한다.
폭력이 빈번하여, 맞는 일이 다반사라 무기력한 피해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
어머니의 침묵은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112에 신고하고 도움을 받으시라. 신고 기록도 이혼소송에 자료가 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많이 있다. 112, 긴급전화 1366, 해바라기센터,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소 등.
소중한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