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시간, 그리고....
2016년 즈음에 <웰다잉 프로그램(well-dying program)>이라는 것이 노인복지 분야에 붐처럼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웰다잉(Well Dying)은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자는 것을 목표로 한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특히 고령화와 가족 해체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등장한 현상으로, 노인의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가족의 도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의식이 퍼지기도 하면서, 건강 체크로 고독사를 예방하고 그동안의 삶을 기록하거나 유언장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다는 취지로, 노인복지 분야에서 이 내용을 중점으로 하여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훨씬 전부터 의료계에서 시작되었지만,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복지분야로 넘어온 것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자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으로,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 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때 특정 경우에 한해 보호자가 이를 결정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자기 결정권에 관하여 논란이 생겨나기도 했다. 2016년 속칭 '웰다잉 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의 본 회의를 통과했으며, 2017년에는 호스피스 분야, 2018년에는 연명의료 분야가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법적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규정되었고, 연명치료 중단의 기준은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 의지가 있고 의식이 있을 때'를 포함해 세 가지의 범주로 구분되었다(다음 백과사전 참고)]
나는 원장님의 제안으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자료 수집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에게 좀 더 쉽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주말마다 대전에 있는 한 기관을 찾아갔고, 5주 동안 열심히 교육에 참여하여 이수증을 받아 오는 열정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어르신들에게 교육의 취지와 진행 방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시작할 즈음에,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르신들께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하지만, 나의 근심은 기우였다. 어르신들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대부분 너무나 초연 [超然] 하셨다.
회기를 거듭할수록 나의 불안은 가라앉았고, 어르신들은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 주셨다. 영정 사진 촬영을 한다고 하니, 화장도 곱게 하시고, 예쁜 옷으로 단장하고 오셔서는 누가 누가 더 예쁜지 농담도 주고받으시며 활짝 웃기도 하셨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해 보자고 설명해 드리니, 영어는 잘 이해하지 못하셨지만, '평생소원', '하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한 일'을 찾아서 써 내시면 된다고 하였더니, 정말 다양한 내용을 적어 오셨다.
한평생 누군가의 딸로, 한 사람의 아내로, 자녀들의 어머니로 (또는 아버지) 살아오신 분들에게 풀지 못한 숙제와 응어리는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소박한 꿈들을 하나씩 간직해 오시면서 항상, 당신보다는 남편과 자녀들의 행복이 우선이었던 분들이셨기에, 그 소박한 소원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해 가슴에 묻어두고만 계셨던 것이다.
나는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최대한 많은 분들의 '소원풀이'를 해 드리기 위해 고심 초사 하며 일정을 잡았다. 결혼하고 난 후 인생의 반 이상을 남편의 병수발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00 어르신을 위해, <기차여행(최대한 오래 타시도록)>을 넣었고, 바닷가에 가서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걸어보고 카페에서 차를 마셔보고 싶다고 하신 분을 위해 바다여행도 계획하였다. 춤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신 분도 계셨고, 글을 잘 몰라서 여태까지 숨기고 사셨던 분은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또 어떤 분은 어려운 살림에 포기했던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기관은 그 내용을 참고하여 프로그램 기획에 대부분 반영하였다.)
다양한 내용을 읽으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를 가슴속에 한으로 묻어 두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어떤 마음인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아버지는 내가 딸이라서, 또 위, 아래로 아들 샌드위치였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서, 또 집안이 조용하려면 내 의지를 꺾어야만 했기에,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내 또래들보다 7년이나 늦게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배움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지 못해서 많은 시간 힘들어했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포목점을 하며, 어렵게 외아들을 의사 만들어 놓은 한 어르신은....
'바쁘다'며 한참 동안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원망과 서운함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하고 계신 것을 알고, 우리는 어르신을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어르신의 담당자가 아드님과 어렵게 통화를 하여 설득에 설득을 한끝에, 드디어 <가족의 날>에 어르신을 만나러 오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자녀들이 안전한지, 사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나를 보러 언제 올는지... 이게 전부였던 것 같았다.
낯짝 한번 보여 주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
(기다리는 어르신의 허전한 표정을 바라보며, 속상한 마음에 그냥 우리 직원들끼리 해 본 말이다.)
"아들은 며느리한테 주는 거여."
해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쿨내 진동하는 어르신이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나는 등신같이 딸을 못 낳았어. 딸 많은 2층 할망구 봐. 얼마나 보기 좋아." 하시며 못내 쓰라린 마음을 감추지 않으셨다. 한참 동안 아들 흉을 보시다가 결론은 며느리 걱정으로 끝을 맺으셨다. 며느리가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뒷마당으로 어르신을 찾으러 나간 내게, 뒤끝 없는 성격의 어르신께서는 한참 동안 속마음을 쏟아내곤 하셨다.
인생의 황혼기에 서 계시는 분과 서쪽 하늘에 넓게 퍼저가는 "해거름"을 보면서,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 오랜 기간 동안 그분들의 사랑과 헌신, 염려와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였고, 그 덕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젊음은 잠깐이며, 시간은 도무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몇 년 동안 어르신들과 생활하면서, 나는 먼저 떠나신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모습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 중심의 사회로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의 행동 양식은 점점 '가족중심의 사고'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최근 뉴스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가족 안에 내 부모님은 내 마음속 어디 즈음에 자리 잡고 계실까?
떠난 뒤에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 지금부터 라도 부지런히 찾아뵈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님은 생각만큼 그리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다'에 1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