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어깨가 고장이 나서 통증이 심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운전할 때 핸들을 돌리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지곤 하였다. 직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에는 너무 멀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나는 고민 끝에 잠시 일을 손에서 놓기로 하였다.
7~8년 전에도 통증이 심해서 수술 권유를 받다가 약물과 주사치료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호전이 되었던 터라 한동안은 잊고 지냈는데... 아마도 지난가을에 접촉사고를 당하면서 간간히 버티고 있던 미세한 힘줄이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회전근개파열이었다. 통증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었고, 각종 검사를 해보니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3개월 정도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어야 하고, 6개월 뒤부터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생활하다가 무리하게 되면 재발하여 다시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
수술이라니!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는 것이었다. 내 생애에 수술이 웬 말인가???
수술을 하게 되면 일단 팔만 못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이 생길 텐데... 동료 간호사의 권유로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한 결과도 마찬가지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고 하면서 쓸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해보자고 하였고, 너무 힘들면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며, 통증 해소를 위한 약을 처방해주었다. 내게 MRI 촬영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젊은 의사는 안됐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속으로) 저요? 사회복지사인데...'
참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힘줄이 끊어졌을까? 스틱 운전을 오래 해서 그런가? 저질 체력으로, 스틱 운전을 하면서 기어 변경하는 것이 힘에 부쳤나?
나는 한참 전에 동생이 타던 수동 기어의 세단형 차를 인수하였다. 모르는 사람이 타던 중고차보다는 내가 알고, 내 손때도 묻은 차가 낫지 않을까 하여 첫 애마로 삼은 후, 12년을 넘게 사용하였다. 중고차가 연식이 좀 되니까 뻑뻑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사실 어깨 통증을 처음 느꼈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퇴근길에 신호를 받으면서 핸드브레이크를 당겼는데, '쫘~악' 하며 찢어지는 소리를 듣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수영을 할 때도 아팠고, 무거운 짐을 들 때도 아팠고, 기어 변경을 할 때도 그랬다. 차가 오래되다 보니, 수리할 데가 조금씩 늘어나던 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엔진룸에 문제가 생겨서 곤란을 겪고 난 후, 나는 나의 애마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수동이 아닌 오토기어(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새 차로 변경한 후부터 운전은 정말 쉬워졌다!
한참 동안 괜찮다가 지난가을의 접촉사고로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신호대기 중인 내차를 초보운전자가 뒤에서 들이박았다. 맙소사!! ) 치료를 계속해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고, 특히 플랭크 동작을 할 때는 오른쪽 어깨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사도 해야 하는데, 짐은 누가 싸지? 수술을 하게 되면, 3개월~6개월 정도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 나를 도와주러 올 것인가? 등 등 평상시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걱정거리로 내 머릿속은 난리가 난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에 내게 하셨던 말씀이 문득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결혼하라고 설득을 하시다가, "너 아프면 어떡할래?"라고 하셨던 적이 있으셨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았다.
나는 병원 진료를 통해 내 상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머리조차 묶기 어려워지자 머리를 짧게 자르게 되었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나고... 정기 진료를 가서 나는 새로운 결과를 듣게 되었다.
"잘 지내셨어요? 어때요, 움직이는 건요? "
"그런대로 잘 지낸 것 같아요. 통증도 많이 줄었고, 팔도 이만큼은 올릴 수 있어요(하며 오른팔을 들어서 보여 주었다). 처음 왔을 때는 아프기도 아팠고, 제 팔을 제가 올리지 못해서 전에 계셨던 선생님이 대신 올려주셨거든요." 하며,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사실 처음 진료를 온 후 담당의사가 바뀌었고, 그때는 내 오른쪽 어깨가 내 것이 아니었다. 마치 남의 팔을 내 몸에 붙여 놓은 것처럼 덜렁거리고 있었고, 통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왼손으로 받쳐서 올려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동안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았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살펴보시던 의사 선생님의 질문이 점점 줄어들더니 갑자기 딱 멈추었다.
"선생님, 더 나빠졌나요?"
"잠시만요..."
"........"
"아! 많이 달라졌네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퍼펙트하네요!" 하며 혼자 신난 듯이 박수를 짝짝짝 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저희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의사가 보는 상황 하고, 환자가 보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요."
환자가 어떤 마음 상태로 상처를 다루냐에 따라 의사들도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고 하셨죠."
"지금 환자분 상황이 그런 것 같네요.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하며 칭찬을 해 주셨다.
의사의 안내로 모니터를 통해 내 우측 어깨에 미세하게 끊어진 줄 하나를 보게 되었다. 저렇게도 작은 근육 1줄이 내 몸 상태를 좌지우지하였구나! 아주 희한하게 끊어졌지만, 마치도 붙을 것처럼 나란히 평행선 상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관리를 잘했다며, 앞으로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 한동안은 수술할 필요는 없겠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다음 진료일은 기간을 좀 두고 잡아보자고 하셨다.
사실 나는 병원 진료 후에, 내 상태의 심각성을 듣고는 한동안 심리정서적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 나는 내가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 할 이유도 없었고, 도움을 주면 주었지, 내가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자 새로운 관점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몇 달 동안 슬프고, 좌절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마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감정 수용 5단계(five stages of grief)>와 유사한 심리적 변화를 겪기도 하였다.
[감정 수용 5단계]이렇게 있으면 누가 나를 먹여 살려주겠냐 하면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했다. 통증을 견디며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였고, 규칙적으로 약도 복용하였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간 안에서 내 인생의 플러스알파였던 그분께로 찾아가 호소하며 매달리기를 계속하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건강체질은 아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잘 살아온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소풍만 갔다 와도 뻗어버리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걱정도 많이 하였다고 하셨다.
운동 마니아인 내 동생은 누나인 나를 '허약해 빠진 저질 체력자'라고 놀리기도 하였고, 한심한 듯 그리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곤 하였다. 동생의 권유로 같이 수영을 배우러 다녔지만, 나는 어깨 통증 때문에 2차례나 접영 시작단계에서 그만두게 되었고, 동생은 계속해서 상급반에 다니게 되었다.
동생은 오리발을 사 와서 자랑을 하더니 힘을 덜며 속도를 올리는 쾌감을 전해주기도 하였고, 어느 날에는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오고, 또 다른 날에는 [철인 3종 경기(triathlon)]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기록을 경신하였다며 기뻐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운동이 그리 좋나?" 하고 물어보기도 하였고, 쪼금은 부러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정교한 기계와도 같은 사람의 몸도 조금씩 탈이 나는 것 같다. 기계도 연식이 오래되면, 부품이 녹슬고 고장 나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다듬고 기름칠을 해주고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부분을 조금은 간과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몸짱이 되기보다는 아프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해서 불편함이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돌보며 정비하고, 기름칠을 하고,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에 [장기 기증 희망등록]을 한 후, 나름 몸 관리를 조심스럽게 하였다. 건강하게 잘 관리하여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식을 통해서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길 수는 없는 상황이고, 죽으면 썩어 없어질 육신인데, 누군가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 몸은 내 것이지만, 머지않아 나의 '생명 기능'이 끝나갈 때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게 될 것이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여라."(창세기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