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들 만의 세상
비 맞는 공원의 까치를 보니
비 오는 오후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였다.
한바탕 소낙비가 내린 뒤, 조금씩 흩뿌리는 비는 곧 개였다가 다시 소리 없이 내리기를 반복하였다.
무지개색 우산을 받쳐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온통 초록색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회색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한쪽 구석 안에 이렇게 초록이 무성하게 또 다른 숲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공원 안에서도 흙을 밟을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잔디 조심] 아니면, [잔디가 아파해요] 이런 안내문을 살짝 무시하고 샛길을 만들지 않는 이상......
나는 흙을 제대로 밟고 싶을 때는 가까운 산을 찾아가기도 한다.
흙에서 오는 기운을 받고 싶을 때는, 더 넓은 숲도 함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숲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한껏 받아들이고, 내 몸속에 쌓인 노폐물들이 빠져나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산책 길에 비를 맞고 있는 까치 몇 마리를 보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기 위해서 좀 더 우거진 나무를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저 놈들이 꽤 지능이 높다지?' 하면서 수년 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화창한 날 오후, 사무실에 안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좌측 창문 너머로 새들이 지르는 격한 비명(?) 소리가 들려와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좀 좀" 하면서 열린 창문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예사롭지 않은 소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지막한 정원수 한 그루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뒤, 까치 한 마리가 휭 하고 날아갔고, 또 조금 있다가 다른 까치 한 마리가 가지 사이를 빠져나와서 날아갔다.
그리고 한참 뒤... 세 번째 까치 한 마리가 머리털이 심하게 벗겨져(?)서 해롱해롱 하는 모습으로... 마치도 별이 보이는 듯 비틀거리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가끔 보는 만화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너네 싸웠니? 그것도 2대 1로? 맙소사! 맙소사!"
나는 사납게 퍼덕이던 날갯짓을 보고 살짝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30cm 자 하나를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큰 나무 밑에 가서 금방 그 사건 현장에서 날아올라가 앉은 까치 두 마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놈들아! 내가 너희들의 언어는 모르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비겁하게 2대 1이 뭐냐? 대화로는 풀 수 없었냐?" 하며 아이들을 훈계하듯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누가 봤으면, 미쳤다고 했으려나?).
팔이 닿았으면, 자로 두 놈의 궁디를 한 대씩 패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자는 너무 짧았고, 2마리의 악당 까치는 내손이 닿지 못하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체하고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본 그 모습은 분명 '폭력'이였고, '왕따' 그 자체였다. 머리털이 반쯔음 뽑힌 불쌍한 까치는 두 마리의 패거리와는 멀치감치 떨어진 가지에 홀로 앉아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그날 내가 본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새들의 세계에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싶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는 까치의 모습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까치는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로, 학명은 Pica pica sericea GOULD라고 한다.
가치, 가티, 갓치, 가지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작(鵲)·비박조(飛駁鳥)·희작(喜鵲)·건작(乾鵲)·신녀(神女)·추미(芻尾)라고도 한다. 까치는 유라시아 대륙의 온대와 아한대, 북미주 서부 등지에서 번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45㎝ 정도로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길다. 어깨·배와 첫째날개깃 등은 흰색,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색,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부리와 발도 검다. 인가 부근 활엽수에 둥우리를 틀며, 한배에 5, 6개의 알을 낳아 17, 18일간 포란, 부화한다.(다음 백과) 참조]라고 되어있다.
우리에게는 동화나 역사서에서 등장하는 새이기도 하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새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까치를 길조라고 여기며,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옛말도 있어 왔고, 까치는 꽤 영리한 새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길조로 알려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까치가 현재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림 개발 및 도시화를 통해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까치의 천적이던 맹금류의 수가 줄어들어 번식력이 좋은 까치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된 데 원인이 있다. 봄, 여름에 나무의 유해 곤충을 잡아먹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반해 딸기, 수박, 감귤, 사과 등의 과실을 쪼아 먹어 과수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하고, 비닐하우스를 쪼아 구멍을 뚫어놓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재산피해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에는 까치의 농작물 피해를 줄이는 다각적인 연구 및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학습능력이 좋은 까치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농작물의 재배시기에 따라 까치를 유해조수로 분류하여 해마다 포획하고 있어 더 이상 길조로 사랑받던 새의 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다음 백과> 국립중앙 중앙과학관) 자료 참조]
까치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보니 위와 같은 자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치의 위상은 세월이 변하는 것만큼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까치를 대놓고 욕할 생각은 없었지만....
물론 이것이 모두 까치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점도 해로운 점도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동심 속의 까치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동물농장]의 열혈 시청자인 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 못 하는 동물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도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새끼 까치가 사람을 따르는 이야기,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이소 [異所]하는 까치 가족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았지만, 싸움하는 까치는... 좀 아니지 않나?
분명 까치들도 그들 세계 안에서 그들만의 규칙과 다툼도 있을 것이고 표현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항상 사이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