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카페를 가다.
오랜만에 전 직장동료를 만났다.
1년 3개월이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린 업무상 낮과 밤을 같이 보냈고 사실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그런 사이였다. ㅎㅎㅎ..., 고향이 같은 경상도 지역이라 처음부터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정이 있었으며, 나를 잘 챙겨주었던 동료였다. 사정이 있어서 내가 먼저 퇴사를 하고 나서, 그녀는 3개월을 더 있다가 퇴사하였다. 내가 퇴사한 후 몇 달 지나서 동료들이 한꺼번에 기관을 떠나게 되었고, 각자 다른 기관에서 업무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통의 이유는 상식적이지 않은 관리자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상한(?) 성향의 관리자는 뭔가 일을 쉬쉬하며 진행하였고, 개소 멤버 3명 만이 공유하는 뭔가가 있었다. 새로 직원이 들어와도 제대로 된 업무 분장도 하지 않았으며, 제한된 일만 지시하곤 하였댜. 직원들을 아우르거나, 업무에 있어 방향 제시를 해 주기보다는 "네가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으며, 권력에 아부하는 그런 일(?)에만 신경을 쓰는 듯하였다. 자신의 실적이 드러나는 일을 하려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내 오랜 경험의 촉이 발동하려고 하였다! 뭐지??? 기관 운영이 투명하지도 않았고 뭔가 수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관성 없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지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모욕감마저 드는 불편한 감정의 무게가 근로의욕을 많이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퇴사 전에 일관성 없는 관리자에게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서 요목조목 근거를 대며 이야기를 다 하고 나왔으니 그래도 속은 후련했던 것 같았다. 그 후,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내내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워하였던 것 같았다.
2차례의 백신 접종을 끝낸 후, 모처럼 연락이 되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기로 하였다.
카톡으로 가끔 연락을 하기는 하였지만, 얼굴을 보기로 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번잡하지 않고, 괜찮은 카페를 검색하여 그녀를 초대하였으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녀와 만나는 날을 기다렸다.
날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산뜻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목적지로 걸어가는 동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을 그 자체였다. 콤바인으로 벼를 거두어들이는 장면도 보였고, 밭에는 풍성하게 자란 배추와 홍당무도 있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푸른 이파리 아래로 무의 흰 살이 흙 위로 살짝 드러나 있는 모습도 보였고, 이름 모를 들꽃과 함께 잘 익은 고추가 한 무더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어, 마치도 채소들의 향연을 보는 것 같아 정겨운 마음이 들었다.
등산을 가면서 살펴 두었던 카페에 들어가,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솔직히 나는 집순이라 시외로 문화유적지를 찾아가는 것 외에 실내에서 만남을 가지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커다란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감나무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만치 반가운 얼굴이 실내에 자리 잡고 있던 벤쟈민 가지 사이로 보이는데, 그녀는 나를 잘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머리를 짧게 잘랐기 때문이었다.
"샘(선생님)~, 머리 모양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어요! 샘은 그대로네요?" 하며 반가워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롱롱 타임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문득 어제도 본 사람 같이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와 지난 몇 달의 공백이 있기는 하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답답했던 전 직장에서의 불편했던 이야기들과 같은 생각을 나누었던 다른 동료의 이야기, 그리고 잠시 우울한 시간이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그녀만 남겨두고 먼저 나온 것이 못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를 크게 웃게 하였던 것은 기상천외한 정신세계를 가진 그녀의 개성 있는 딸내미 이야기였다.
그래, 좋구나!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는데, 내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터라 나는 나만의 동굴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혼자 만의 시간은 사양하기로 하였다.
샘, 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하고 내게 묻는 그녀에게,
"음, 샘은 책임감이 강하게, 배려심도 깊고, 따뜻한 사람이지. 단점이 있다면,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는 거야."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가 하며 수긍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근무를 하면서, 이기적이고, 시건방진 어떤 직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런 그녀의 성향을 일찌감치 눈치챈 나는 그녀가 깍쟁이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옆에서 방해를 놓기도 하였고, 눈치를 주어서 '커트'하게 한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어디에나 한 두 명은 있는 깍쟁이 같은 사람이 순한 사람은 참 잘 알아보더라.
그리고 그런 순둥이를 이용하려 드는 꼴을 나는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였다.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미루고, 폼나는 일만 하려 드는 이기적인 성향의 직원은 퇴출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직원은 소 마왕이고, 기회주의자라 오래오래 살아남더라.
직장이라는 '경쟁'과 '부단한 자기 계발'이 필요한 작은 사회 안에서 '공정한 경쟁'으로 승부할 수 없는 것도 아쉽고 안타까운데, 인간성 바닥인 동료나 상급자를 만난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생각한다.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직장에서 내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나도 그녀도 그곳에서 신발을 털고 나왔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 불편한 경험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더욱 열심히, 더 즐겁게 살아보기로 하였다.
큰마음을 먹고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하는 내게 그녀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었다.
그녀는 가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고향 사투리를 알아듣고 무심히 대꾸해 주기도 하였고, 친정어머니가 담가 주신 맛있는 김치나 별난 음식이 있으면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나눠주기도 하였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으며, 밉상 때문에 열 받은 이야기를 투덜대며 가감 없이 쏟아놓기도 하였고, 불의를 보면 흥분하기도 하였다.
마음씨 따뜻하고, 나눌 줄 알며, 상대방을 배려할 줄 하는 그녀가 내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