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융릉과 건릉]으로 사도세자와 정조 임금의 릉이 모셔져 있는 곳이었다. 마음먹고 길을 나선 날, 날씨는 화창했고, 이른 시각에 출발하였던 터라 길이 막히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멀지 않은 화성에 자리 잡은 릉은, 조선왕조 제22대 임금이었으며 조선에 제2의 융성기를 만들었던 정조대왕과 그분의 아버지였던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의 릉이 있는 곳이었다.
한적한 이곳의 공영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천천히 걸으면서 살펴보니,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온통 참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정갈하게 꾸며져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아늑하게 느껴졌으며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그런 곳이었다. 안내문(리플릿)을 받아 들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마스크를 벗고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지만, 저만치 앞서 가는 사람도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멀지 감치 떨어져 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살펴봐야 했기에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였다.
[소나무 숲길-융릉으로 가는 길]
TV를 통해서 [이산]이라는 사극을 보면서, 또는 국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정조 임금의 일생과 그분의 업적은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며, 지금 내가 보러 가는 것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임금의 사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듯이 정조의 아버지셨던 사도세자(장조)의 릉부터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걸어가는 내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봉안당은 너무 멀어서 큰맘 먹지 않으면 갈 수가 없으니, 먼 옛날 나라님의 릉에라도 가보기로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융릉 안내도]
마침내 다다른 융릉에는, 정조 임금이 아버지였던 사도세자가 어린 세손을 두고 붕당정치의 희생양으로 뒤주 속에 갇혀 죽어가야만 했던 애통함을 가슴속에 묻어두고는, 즉위 후, 아버지를 추모하며 못다 한 효를 다하기 위해서 존호를 왕으로 높이고, 릉을 만들어 옮긴 곳이라고 되어 있었다. 추존 장조(사도세자)와 한중록의 저자이시며, 어머니셨던 헌경 황후(혜경궁 홍 씨)의 합장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융릉 - 추존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 합장릉]
어린 왕세자, 영특하였던 장헌세자(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과도한 기대감으로 국본으로서의 조기교육을 받게 되었고, 15세의 어린 나이로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게 되면서 당시 노론세력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여러 가지 기행을 저질렀고, 기회를 노린 붕당의 세력다툼 속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폐세자가 되었으며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게 되었다고 역사서는 말해 주고 있다.
붕당정치의 폐단은 이미 잘 알고 있고, 정치와 권력이라는 것이... 그 묘한 매력 때문에 한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권력이라고 하였다. 또한 권력은 아들과도 나눌 수 없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그 권력을 잡기 위해 무수한 권모술수 (權謀術數)를 동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를 여의고, 시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홀로 힘겹게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숨 가쁘게 흘러가는 궁중 내 시기와 질투, 음모와 비방,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했던 권력 투쟁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야 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포기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암살자들의 위협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아서,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고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세손 시절부터 얼마나 외롭고, 살벌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정조 임금과 그분의 정비였던 효의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건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즈넉한 길목에서 방문객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자녀들을 동반하여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작은 모둠들이 이쪽저쪽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양쪽으로 즐비한 참나뭇과 상수리나무 숲을 지나면서, 길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도토리가 수도 없이 많이 눈에 띄었고, 길 가장자리에는 어여쁜 색으로 몸치장을 한 이름 모를 버섯들이 조그마하게 무리를 이루어 자라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색상과 모양이 마치 만화 [스머프]가 연상되면서, 투덜이 스머프가 투덜대는 모습이 아른거리기도 하였다.
융릉보다는 조금 작은 듯 하지만, 단정하게 자리 잡은 건릉에는 정조 임금과 효의왕후의 합장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효의왕후는 생전에 자식을 낳지는 못했지만, 죽어서 남편과 함께 묻힐 수 있는 복은 누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수리나무 숲길-건릉 가는 길]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온통 초록의 상수리나무가 병풍처럼 벽을 치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조선왕조 2번째 융성기를 이끌었던 임금님의 릉이 위엄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자각 뒤에 정조와 효의왕후 합장릉이 보이고, 꼬맹이들이 숙제하러 올라가고 있다]
일정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숙제를 하러 온 초등학생 몇몇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종이 위에는 과제인듯한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종이 한 장을 보며 무리 지어 릉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리로 가는 거 맞아?"
하며 또 다른 무리 중에서 뒤처져 따라오던 남자아이가 동무인듯한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 아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그 사내아이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며,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아이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쪼르르 동무들의 뒤에 바쁘게 따라붙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사후에, 사람들이 나의 무덤을 찾아줄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虎死遺皮人死遺名(호사유피 인사유명)."
는데...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걷게 되었다.
이름을 남기는 것도 종류가 있지 않은가?
악명(notorious)으로 사람들 기억 속에서 넌더리를 내는 것보다, 이왕이면 빛나는 업적으로 유명해져서(famous)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하겠지 하며 그곳을 벗어나게 되었다.
문무에 능하였으며,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많은 업적을 남긴 호학 군주(好學君主)로서, 또한 어버이에 대한 효심으로 가득했던 정조 대왕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다.
비 내리는 오후, 매표를 하고 나서 지난번에는 돌아보지 못했던 릉의 뒤쪽 산책로를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가을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었지만, 2박 3일 동안 ZOOM수업으로 온몸이 찌뿌둥하고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풀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조용하다.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와 가늘게 내리는 비가 흙바닥에 '투둑'하고 떨어지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멋스럽고 운치가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날이 좋아서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거야!'
리플릿을 살펴보며, 이번에는 건릉에서 시작하여 융릉 쪽으로 넘어가 보기로 하였다. 건릉 앞에서 멀리 릉을 바라다보니, 어! 저건...!!!
보슬비 내리는 싱그러운 초록의 잔디 위를 잘 생긴 노루 한 마리가 힘차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빨리 폰을 들어서 이 순간을 찍어 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네발 달린 짐승의 속도를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을까? 그새 노루는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이냐! 오늘 이곳에서 본 광경을 '행운'으로 여기며,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하였다.
인적이 드문 나지막한 산책로를 걷다가 오르막이 나오자, 가뿐 숨을 내쉬며 걸어 올라가기도 하였고, 맞은편에서 사람이 보이면 숨소리를 죽이며 받쳐 든 우산을 살짝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길을 걷다 보면, 이내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걷다가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면, 사방이 푸르른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잠시 서서 시간이 멈춘 듯 한 정적과 이 여유를 한껏 즐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정조 초장지에서 융릉 가는 돌다리 입구]
작은 돌다리를 건너며 무심히 피어있는 어여쁜 꽃을 보며 혼자서 탄성을 지르기도 하였고, 빗방울 떨어지는 개울가에 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였다.
이런 것이 쉼이고, 진정한 힐링(healing)이지!
[정조 초장지에서 융릉 가는 길 돌다리 위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곳에서 모처럼 평안함을 느껴 보았다.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자주 방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낀 이 아름다움과 평화로운 기운을 맘껏 누려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