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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가영 Feb 15. 2024

똥 범벅이 되어도 좋아.

초보 엄마 아빠의 매운맛 육아

 출산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예쁜 딸과 돌아온 집은 남편이 미리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둔 덕에 따뜻했다.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난 우리 집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던 전과 달리 아기 울음소리로 채워졌다. 아기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집안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맞벌이로 일하던 우리 부부에게 집은 잠을 자는 곳, 저녁을 먹는 곳, 주말에 휴식을 하는 곳. 그랬기에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이 적었는데 이젠 갓난아기의 세찬 울음과 부부의 웃음소리가 24시간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직 태어난 지 25일.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생명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리원 2주 등록을 해놓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1주 만에 조기퇴소하고 나올 때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3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나 분유를 줘야 하고, 젖병을 세척하고 이것저것 하고 다시 잠들려 하면 또 수유 텀이 온다. 조리원에서 푹 쉬고 나와야 한다는 육아 선배들의 조언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호기롭게 '어차피 해야 할 육아인데 일주일 먼저 한다고 큰일이야 나겠어?'라며 집에 돌아왔는데 정말 곧 '큰일'이 날지도 모를 피곤함을 알게 되었다. 산후 도우미님이 집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아마 지금쯤 좀비가 되어 있겠지. 그나마 산후 도우미님의 존재로 이렇게 글을 쓸 여유도 챙겨본다.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엄마 아빠는 아직도 배울게 많다. 아기도 그걸 아는지 서툰 손길엔 가차 없이 울음을 터트린다. 남편이 처음 젖병을 물리던 날 각도가 안 맞았는지 뿌엥 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딸을 보며 갓 태어났어도 알 건 다 아는구나 싶었다. 행여 으스러질까 불편할까 애지중지 트림을 시키던 어설픈 남편의 옆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육아 며칠만에 남편은 유튜브를 보며 트림 자세를 연구해 베테랑 트림사가 되었다.


 아침 7시 출근을 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 수유는 꼭 거실에 나가 최대한 조용히 한다. 안 그래도 잠이 많은 남편은 육아를 하며 더욱 피곤해했고 육아 휴직과 잇따른 설 연휴로 황금연휴에 황금 육아를 경험하고서 출근은 지옥 맛이라고 했다. 남편의 잠든 모습이 분명 출산 전에는 얄미웠는데 이젠 안쓰러움 마저 들 것 같다. 


 휴일엔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매우 높다. 난 평일에 독박 육아를 한다는 핑계로 주말엔 육아에서 해방된다. 남편이 수유 텀을 체크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병 세척을 한다.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는 것도 다 남편 몫이다. 티브이에 남편의 육아 참여도에 대해 많이 언급할 정도로 요즘 남편들의 육아 참여를 유도한다는데 우리 남편은 고맙게도 중증 딸바보 병을 앓는지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한다. 아마 우리 딸이 크면 아빠만 졸졸 쫓아다니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이런 남편 또 없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 딸은 먹는 양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잘 먹고 잘 싸는 편이다. 덕분에 기저귀를 열 때마다 오줌 발사를 맞은 게 몇 번이나 된다. 남자아이도 아닌데 힘이 좋은 건지 오줌이 발사된다. 새벽 수유 중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는지 모른다. 똥도 잘 싸는 편이다. 양도 많다. 다 싼 줄 알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러 갔다 오는 사이에 남편 옷이 몇 번이나 똥 칠갑이 되었는지 모른다. 초보 엄마 아빠는 딸의 똥 범벅 테러에도 그저 웃기고 귀여워서 실실거리며 웃는다. 똥 범벅이 되어도 그저 내 딸이니 행복하다. 똥오줌을 맞아도 기분 나빠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우리는 하고 있다.


 육아는 힘들다. 몇 시간을 울어 보채는데 왜 우는지 가늠도 못하는 엄마 아빠는 밤을 꼴딱 새워가며 발만 동동 굴린다. 아기도 초보 엄마 아빠의 손길이 불편한지 몸을 비틀며 악을 쓰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고 어리숙한 손길이지만 마음만큼은 10년 육아 베테랑 못지않음을 확신한다. 밤을 새워 다크서클이 턱 끝에 내려와도 힘들지 않다. 소곤소곤 잘 자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피곤은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인생 최고로 피곤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대가 없는 노동에 심신이 지치지만 더없이 행복하다. 아, 이게 육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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