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의 "나" 로서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
평소 SBS 스페셜을 즐겨보는데, 이 회차는 특히나 더 곱씹을 거리가 많아서 꼭 공유를 하고 싶었다.
이 날의 방송 주제는 조금 특별했다. 앞날에 대한 불확신으로 가득 찬 20대 학생 세명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확신을 찾기 위해 3박 4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기간만큼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온전히 본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
어리둥절해하는 이들에게 제작진은 국어사전 하나만 던져준 뒤, 아래 2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지금까지의 나를 규정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2. 나의 인생 단어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보고 순간 멍 때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참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술사와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참가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재미가 아닌 타인의 "관심"이 본인을 지금까지 이끌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술을 선택했던 것도, 관객들로부터의 즉각적인 관심과 반응이 즐거워서였고, 공부 역시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한 것이었다. 타인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었던 본인의 모습에 슬퍼했다.
소설가를 꿈꾸는 학생은, 본인의 삶이 "부빙" (강이나 바다 위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이라는 단어로 규정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얼음 조각이 바다 위에서 떠다니다 보니까, 어느새 깎여 나가고 깎여 나가고, 그러다 보니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장점들마저 남의 시선에 의해 녹아버린 게 아닌가 하고 아쉬워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어쩌면 내가 아니었던 걸까?
인생 단어를 찾아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도연스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왜 찾아야 되나를 잘 알아야 해요.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 들어봤어요? 질문을 잘 던져야 해요. 왜 인생 단어를 찾아야 하나. 누가 찾으라고 해서 지금 찾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해요."
지금까지 쭉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서, 본인이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나만의 이유"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는, 본인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고, 또 뭘 해야 하는지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본인의 인생 단어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이현세 만화가, 데니스 홍 로봇공학자, 그리고 이상묵 서울대 지구 환경 과학부 교수는 자신의 인생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현세 만화가 - 자존감
"꿈꾸는 세상을 산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운명과 싸울 때마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결정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 것 인가? 에 대한 물음에 가져야 할 키워드가 있다. "인생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 세상의 중심이고,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보면 결국 우리는 방법을 찾게 된다: "너는 너를 사랑해? 너를 아껴? 그럼 너는 어떤 결정을 할 거야?"
데니스 홍 로봇공학자 - 긍정
"누구나 항상 성공할 순 없죠. 누구나 실패를 해요. 저도 성공하신 분들 굉장히 많이 아는데,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실패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도 실패를 많이 하고, 여러분들도 실패를 많이 할 거예요. 실패했을 때 거기서 배우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힘. 그게 긍정의 자세죠."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탐구
"저는 인생이 두 단계로 나뉘어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로는, 자연 과학자로서 바다를 탐구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사고로 장애인이 된 다음에 나머지 삶을 뭐로 살 건가 생각을 했는데 거기도 탐구라는 단어가 들어가더라고요. 우주학자 칼 세이건이 이런 말을 했어요. "I don't want to believe, I want to know." 알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남들이 말하는 말을 믿고 남들이 쌓아놓은 토대 위에 나의 지식과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쌓고를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학문에서 진리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이들에게, 인생 단어는 본인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일종의 원칙이었다.
어느새 촬영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청년들은 본인의 인생 단어를 찾는 데 성공한다.
마술사와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청년은, "책임"을 본인의 인생 단어로 선택한다. 누군가에게 책임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임을 완수하고,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본인에게는 즐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학생은 "창달" (의견 견해 주장 따위가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표현되고 전달되는 것)을 본인의 인생 단어로 선택한다. 본인이 잘 창달한 책이 사람들 손에 들려있을 장면을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선, 창달한 자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 나로부터 시작해서 창달할 것." 물론 사람들의 취향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무조건 타인에게 맞춰서 글을 써다 보면 결국 본인은 없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5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곱씹을 거리가 많은 방송이었다.
제작진은 왜 이들에게 "인생 단어"를 찾으라고 했을까?
사실 단어 자체는 중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중요했던 건 아마 이 답을 찾기 위한 과정,
그 과정 속에서의 끊임 없는 나를 향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본인들이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인생 단어란 건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내 "삶의 기준"이 되어줄 나침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