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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ug 03. 2018

폭우 속의 질주, 시마나미 해도 탐방기

일본 사이클링의 성지라고 불리는 시마나미 해도를 직접 달려보다!

에히메현은 일본 시코쿠 북서부 해안에 인접한 지역으로, 비행기를 이용해 이 지역을 방문할 경우 만나게 되는 마쓰야마시(市)는 조금 규모 있는 어촌 같으면서도 크고 작은 산들이 많아 우리나라 남해안 같은 느낌을 준다. 이번 여행의 목적인, 총장 70km에 이르는 일본 사이클링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시마나미 해도(しまなみ海道)>는 마쓰야마에서 삼십 분 정도 거리의 이마바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에히메(愛媛)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의미로, 그만큼 기후가 온난하고 빼어난 자연 절경을 가진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시마나미 해도가 펼쳐져있는 6개의 섬과 다리를 둘러싼 세토내해는 ‘일본의 에게해’라는 멋진 별칭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취재를 위해 에히메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이러한 미사여구가 무색할 정도로 호우주의보와 재난경보가 울리기 바빴으며, TV에서는 걱정스러운 톤의 목소리로 연신 피해 상황을 보고하는 아나운서와 벌건 흙탕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사이클링과는 무척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운동이라고 해 봐야 가끔 한강 변을 뛰는 것과 겨울에 스키를 조금 즐겨왔을 뿐이고, 자전거란 내게 있어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가는 데 쓰이는, 조금 빠르고 편한 이동수단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루의 대부분을 그림을 그리거나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내게 있어 사실 이번 취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21일 간 걸었던 스페인에서의 순례길은 인간 본연의 힘으로 직접 길을 달리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착실하게 나아가는 일에 대한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동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세계가 좁아지고, 풍경은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가 되면서 이동이라는 행위는 단지 단축되어야만 하는 비생산적 시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그 편리함으로 인해 목적지로 가는 동안 지나치게 되는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싸이클링은 걷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풍경을 제대로 보는 법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패달을 밟아 목적지를 향해 조금은 느리게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이번 취재가 무척 기대가 되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날씨는 좀처럼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자전거를 빌려놓고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는 쉴 새 없이 지면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러나 에히메 현청과 미리 취재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지원해 주러 나온 직원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취재 코스를 단축하여 두 번째 섬인 하카타지마 까지 약 25km를 달리기로 하고 싸이클링에 꽤 일가견이 있는 인페인터글로벌의 직원의 리드로 얇은 비닐 우의로 몸을 감싼 채 우리는 빗속을 향해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마바리와 오시마섬을 잇는 길고 거대한 다리가 시마나미 해도의 첫 관문인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다리 위를 달리며 저 멀리 점점이 보이는 작은 섬들과 탁 트인 바다는 맑은 날의 시마나미 해도가 얼마나 환상적일지 짐작케 했다.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일 것이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도로나 안내가 무척 잘 정비되어 있어 싸이클링에 많은 경험이 없더라도 큰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 도착하게 되는 오시마섬에서는 일본 시골 어촌의 소소한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코스 중간 중간에는 자전거를 거치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답게 현지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조개구이 등을 맛볼 수도 있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잠시 들른 휴게소 가림막 아래서 맛보았던 화로위에서 익어가던 조개와 새우의 맛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목적지인 하카타지마 섬의 자전거 터미널까지는 거센 비와 바람 탓에 약 세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싸이클링 초보자에게는 어쩌면 무척 열악한 조건 속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 되었지만, 사실대로 이야기 하자면 자전거를 타는 내내 무척 즐겁기만 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심한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덕분에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라곤 우리뿐 이어서 해도를 전세 낸 느낌마저 들었고, 무엇보다 그 많은 비를 걱정 없이 흠뻑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축축했다고 하기 보다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늘 피하기 바빴던 비를 그렇게 원 없이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기꺼이 즐기게 해 준 것은 시마나미 해도의 수려한 경관과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일 것이다. 이 빗속의 짧고 굵었던 라이딩은 언젠가 다시 시마나미 해도를 찾아오겠다는 확실한 결심과 새로운 한 명의 라이더를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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