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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Sep 28. 2018

숲, 온천, 그리고 불꽃(完)

5일 간의 일본 아키타 유랑기 < 글, 그림 | 김선우 >

ⓒ 2018. 김선우



오마가리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곧바로 우리는 다시 뉴토온천향의 숲속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거짓말처럼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닐 우의를 뒤집어쓰고 물안개가 자욱한 숲속으로 향하는 작가들의 뒷모습은 어느 스릴러 영화의 한 컷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8월이었지만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에 너도밤나무 숲은 서늘하다 못해 조금 쌀쌀하기까지 했는데. 작년에 이미 한 번 이곳에서 행사를 진행했던 작가님들은 그 때도 내내 비가 왔다며, 이젠 익숙하다고 너털웃음들을 지었다. 나는 숲속에 걸어놓은 그림들과는 별개로, 얼마 전 개인전에 썼던 현수막을 잘라 뒤에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를 붙여 세워놓을 수 있게 만들어서 숲속 여기저기에 도도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작년 크리에이터 교류에 함께 했던 승현작가는 프로젝션 맵핑 작업이 특기인 덕분에 빗속에서 빔을 쏴 보겠다고 숲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며 분투한 끝에 값진(?)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작년 여정을 함께 했던 리아작가님,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지민작가와 부산에서 오신 수영, 소을, 선영 작가님들과 함께 천막 아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주고, 때로는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2018. 김선우


 <좋아서 하는 밴드>의 손현님과 조준호님은 숲 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기타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나긋나긋하게 노래를 불러주셨다. 비가 오는 이 숲 속에 대체 누가 올까 사실 걱정을 조금 하기는 했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마치 비를 피해 숲 속의 숨겨진 비밀 안식처를 찾듯 사람들의 발걸음은 드문드문 하루 종일 이어졌다. 비록 언어는 제대로 통하지 않았지만,  음악과 그림이라는 ‘공용어’가 우리를 웃음 짓게 했다.




ⓒ 2018. 김선우


뉴토온천향의 온천들은 온천의 질이나 경관들이 수려하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온천장 각각이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어 마치 서로 다른 마을을 방문하는 느낌을 준다. 프로젝트 중간에 잠시 들렀던 츠루노유 온천(鶴の湯温泉)의 역사는 무려 16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먼 옛날 상처 입은 학이 온천탕에 들어가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을 본 사냥꾼이 츠루노유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츠루’는 일본어로 학이라는 뜻이다. 이 유서 깊은 온천장은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며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원형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져왔다고 한다. 


츠루노유에서 먹었던 정갈한 점심식사 ⓒ 2018. 김선우


온천장의 음식들은 주변 숲 속에서 직접 채취한 건강한 식재료들로 정성껏 만들어지고, 특히 오래 전부터 남녀가 함께 써 왔던 혼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혼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함께 입욕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사실 민망해지기 일쑤지만, 현지 사람들의 경우에도 나이든 어르신들 이외에 젊은 친구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간 당황해 한다고. 현재 일본에서는 혼탕을 새로 만드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몇몇 혼탕들은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츠루노유는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그 흔한 대리석 바닥이나 현대식 사우나도 없이 온천장 전체가 목조로 지어져 온천을 둘러싼 너도밤나무 숲과 전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치 깊은 숲 속 비밀 정원처럼 숨겨져 있다. 거기다 찾아오는 이들이 숲 속의 온천을 온전히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현대인들에게는 불편해 보일 수 있는 방식들을 고수해 왔다고 한다. 전파가 잘 터지지 않는 이곳에 전화기가 놓인 것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심지어 최근에서야 와이파이를 설치했다고. 나는 그런 점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들은 24시간 연결이 된 상태로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편의성이 가져다 준 무한의 연결성은 우리를 더욱 쉴 틈 없을 만큼 분주하게 만들어 버렸다. 일정 기간 동안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의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와 같은 신조어는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의 과잉이 가져다주는 피로를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가슴 뛰는 아름다운 경험을 카메라의 렌즈가 아닌 우리의 눈을 통해 온전히 느끼고, 스마트폰 액정 너머의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가 아닌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공감하는 일은 그 시간의 기억들을 더욱 선명한 색깔의 추억으로 남겨줄 것이다.     



ⓒ 2018. 김선우


아키타를 떠나기 전날 머물렀던 다에노유 온천(妙乃湯)은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끼고 있어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로 숲과 거대한 폭포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온천의 자랑거리다. 츠루노유가 옛것을 보존하고 지키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다에노유는 전통적인 것들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산뜻한 느낌을 주는 온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에노유의 주인장이 미술품에도 관심이 많아서인지, 온천장 곳곳에 걸려있는 작품들이 이곳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욱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가져온 내 작품 몇 점도 이번 기회에 다에노유의 로비에 설치를 하게 되었다. 

다에노유도 츠루노유와 마찬가지로 혼탕을 가지고 있는데, 남 · 여 탕이 따로 존재하기는 했지만 혼탕에서 바라보는 폭포와 숲의 풍경이 절경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본격적으로 혼탕으로 돌격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이용객이 없어 노천탕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온천욕으로 한껏 돋아진 입맛은 장장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저녁 코스 요리로 이어졌다.


ⓒ 2018. 김선우


 일본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믿어질 정도로 음식이 입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치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이 크다는 것이다. 마지막 저녁 식사는 이제껏 아키타에서 맛본 ‘시각적 식사’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여정의 끝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는 동안 산지에서 채취한 버섯, 훈연한 민물고기와 이곳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훈연 단무지 등이 계속해서 접시에 놓여졌고, 마치 아키타에서의 여정을 음식으로 복습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 프로젝트를 계획한 박성희 대표님의 솔직한 기획 의도도 들을 수 있었다. 대표님이 이렇게 작가들과 함께 아키타에 자꾸 오게 되는 이유는, 당신이 이미 수십 번은 경험한 이 시간들이 너무 아름답고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받은 영감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에게 이 멋진 풍경들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지 그 마음이 작가들에게 전해져서, 그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즐겁다고 하셨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존재하지만 결국 예술이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을 주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예술이라는 영역이 쉽게 다룰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 분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예술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소통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멋진 경험을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누고, 함께 공감하는 일을 하는 당신은 어쩌면 이미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떠나는 마지막 날, 우리는 숲 속에 설치했던 천막들을 걷어내고, 펼쳐놨던 테이블들을 정리했다. 숲 속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방수 천에 인쇄된 작업들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아마 얼마간 더 걸려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이용해 설치했던 작업들은 프로젝트 기간 내내 꽤나 나를 속 썩였다. 현수막을 지지하는 아이스크림 나무막대들을 일일이 글루건으로 쏘아 고정을 시켜놨었는데, 비에 몽땅 젖는 바람에 물먹은 현수막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힘없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덕분에 작품들을 전부 수거해 숙소에서 밤늦게 까지 다시 붙이는 작업을 해야만 했는데, 함께 방을 쓰게 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조준호님은 내가 말없이 작품을 보수하는 내내 옆에서 우쿨렐레 연주와 함께 즉흥 노래를 불러주셨다.      


“이백 년 전에 멸종한 도도새는- 아이스크림 막대와- 글루건으로 다시 태어난다네-”       



지금까지 거의 오 년 간 내가 그려오고 있는 도도새는 노랫말과 마찬가지로 이미 이백 년 전에 멸종해 사라진 새다. 그들은 아프리카 남부 마다가스카르 섬 인근의 모리셔스라는 작은 섬에 살았는데, 날 수 있는 새들이었지만 천적도 없고 먹이가 풍부한 환경 속에서 결국 스스로 날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이 섬을 찾았고, 그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 서서히 사라져갔다. 나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들도 현실에 안주하고, 보기 좋은 포장으로 애써 치장하면서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사회는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거나 엇나가면 곧바로 관심으로 포장된 걱정과 오지랖을 쏟아내는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틈도 없이 경쟁에 내몰리고, 그렇게 자신을 모로는 채로 삶에 휩쓸려간다. 그렇게 사회에서 요구되는 ‘적당히 좋아 보이는 직장’과 ‘적당히 좋아 보이는 삶’을 얻도록 강요당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친 대다수의 청년들이 최근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와 정서적 빈곤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일의 능률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도도새에 대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게 된 계기는 일현미술관에서 주최한 <일현 트래블 그랜트>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작가가 계획한 여행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나는 도도새가 멸종했다고 알려진 모리셔스 섬으로 직접 떠나 한 달 간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현지에서 도도새에 대한 자료수집, 드로잉, 인터뷰 등을 비롯한 리서치를 수행한 것들을 토대로 현대인과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 2018. 김선우


나의 작업에서는 주로 복잡한 정글 속 여기저기에 도도새들이 숨어있는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모리셔스에 방문 했을 당시 보고 느꼈던 감정들이 표현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열대 기후에 속하는 지역인 모리셔스는 일 년 사계절 내내 덥고 습해 어디든 정글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고, 그런 정글의 섬에서 존재하지 않는 도도새를 추적했던 행위는 나에게 그들과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을 하는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 비현실적인 방황이 여정 내내 나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던 이유는 늘 명료한 답을 찾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심지어 예술의 영역에서도 어떤 명확한 답을 찾도록 훈련받는다. 그러나 모리셔스에서의 한 달 간의 방황은 오히려 이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방식의 생각과 고민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당시에 나는 미술대학을 갓 졸업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이런저런 고민들만 쌓아가던 시기였다. 그렇게 방황을 하던 도중 공모에 선정되어 그 머나먼 타지에서 더욱 격렬한 방황을 하게 되었던 거다. 결과적으로 한 달 내내 지속됐던 모리셔스의 숲에서의 방황은 내가 작가로서 가져야 할 어떤 마음가짐 같은 것들, 이를테면 불확실성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 자기만의 세계와 개성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라는 일련의 깨달음과도 같은 경험을 선사해주었고, 그 경험은 내게 숲이라는 장소와 여행이라는 행위를 계속해서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인지, 길지 않았지만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여정 대부분을 낯선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 어떤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숨 가쁜 일상을 살아내는 와중에 문득 물안개가 자욱했던 뉴토온천향의 너도밤나무 숲을 다시 떠올릴 때면, 토독이며 나뭇잎들을 적시던 수많은 빗소리와 우쿨렐레 소리, 사각이던 연필소리, 나직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비록 소로와 테송처럼 몇 년 또는 몇 달 씩이나 숲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숲에서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키타에서 보낸 5일은 정신없이 추어 오던 춤을 잠시 멈추고 무대 뒤편에서 한숨을 돌리는 인터미션(intermission)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마르틴 부버 (Martin Buber)는 그의 저서 <나와 너 Ich und Du>에서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런 목적지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어떤 숲도, 그 어떤 여행도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과 문제를 해결할 만한 확고한 처방전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은 우리가 미처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비밀스런 목적지’로 향하는 단서들을 조심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때문에 여행은 각자 저마다에게 다른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내게 있어 아키타 여행에서의 비밀스런 목적지가 있다고 한다면 시간과 빚어오던 갈등을 조금은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다시 시간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아키타의 너도밤나무 숲을 떠올릴 때가 되면, 주저 없이 먼지 쌓인 캐리어를 꺼내 다시 한 번 잊고 있었던 목적지를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끝>


ⓒ 2018.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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