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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Sep 20. 2018

숲, 온천 그리고 불꽃 (2)

5일 간의 일본 아키타 유랑기 < 글, 그림 | 김선우 >

ⓒ 2018. 김선우


우리는 분주한 첫째 날을 보내고 다음날, 규카무라 온천과 구로유 온천을 잇는 너도밤나무 숲길로 무대를 옮겼다. 원화를 들고 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터라,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방수 천에 인쇄해 숲길 여기저기에 세워놓는 방식으로 설치가 진행되었다. 천을 묶어놓을 각목을 박아 넣는 일이 난관이었지만, 불끈거리는 근육을 자랑하며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 목수 아저씨 덕분에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오전 내로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본인의 집도 직접 목공으로 지었다고 하시는 분이라, 프로젝트 일정 동안 버스킹을 하는 분들이 비를 피할 천막과 프로젝터를 보호할 가림막의 뼈대를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언젠가 목공을 배워보리라는 로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뭔가를 직접 만들고 짓는 일에 우리가 종종 참을 수 없는 욕구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도시라는 정주사회 속 움직이지 않는 장소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가만히 앉아서 보내게 된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춰 볼 때 극히 짧은 시간일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지어왔다. 비록 우리는 많은 것들을 이미 망각했지만, 그 역사는 아직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며 여기서 음악으로, 그림으로, 그리고 그들의 무대로 발현한다.


ⓒ 2018. 김선우







숲 속에서 작품 설치를 마친 우리들은 곧바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일본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불꽃놀이인 <오마가리 하나비(大曲花火)>를 보기 위해 오마가리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오마가리로 향하는 모든 열차는 좌석과 입석 모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해 마치 어느 분주한 아침의 통근열차 같았지만, 그렇게 몇 시간을 좁디좁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이동하는 내내 모두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먹거리와 돗자리를 한아름 안은 사람들을 싣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열차는 오마가리를 향해 착실하게 달려 나갔다. 


먹거리를 한가득 들고 불꽃놀이 축제장으로 함께 이동하는 참여 작가들. 노란 명찰 목걸이는 축제장의 입장권 겸 좌석 티켓이다. ⓒ 2018. 김선우


아키타현 남부 다이센시에 위치한 오마가리는 일본의 흔한 중소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거의 한 세기 동안 불꽃놀이를 축제로 지속해 왔다는 것. 우리가 찾은 이번 불꽃놀이만 해도 무려 92회 째라고. 단순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예선을 거쳐 선발된 전국의 불꽃 장인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경연대회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무려 80만 명이 이 도시로 모여든다. 그러니까 거의 작은 도시의 인구 규모가 이곳으로 결집하는 거다. 불꽃놀이는 도시를 끼고 있는 오모노 강변에서 열리는데, 불꽃놀이가 열리는 메인 이벤트장인 강변의 자리는 전부 자리를 구매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불꽃놀이가 워낙 대규모인 탓에 웬만하면 멀리서도 보이기 때문에 강변으로 가는 길과 방죽 위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깔고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를 가득채운 그 거대한 기대의 마음 때문인지, 이 작은 도시는 불꽃놀이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가 타들어가는 폭죽마냥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처럼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 2018. 김선우

오모노 강변의 불꽃놀이 행사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는 행사가 시작되기 몇 달 전에 이미 매진이 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그것도 모자라 숙박 또한 일 년 전에 예약이 꽉 차버린다고. 우리는 다행히 전부터 인페인터글로벌과의 인연으로 항상 도움을 주셨다는 현지인인 타카노리씨 덕분에 가장 명당이라는 자리 중 하나에 안착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일본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비 예보가 되어 있었지만, 어제까지도 그렇게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축제날에는 말끔히 그치고 불꽃이 그려질 하늘빛 캔버스가 말끔하게 펼쳐져 있었다.

불꽃놀이는 의외로 해가 떠 있을 시간부터 시작을 하는데, 대표님 말씀으로는 일종의 마이너리그 같은 거라고. 강변을 새까맣게 메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제 빛을 다 내지 못하는 불꽃들과 함께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챙겨온 도시락을 꺼내 먹거나 맥주를 홀짝거리며 즐거운 표정으로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기다린다는 시간이 이처럼 즐겁게 느껴졌던 순간이 얼마만인지. 펑, 펑 울리는 폭죽의 소리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아득히 울려 퍼졌다.      




정글과도 같은 도시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마치 끝내야만 하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바쁘게 써내려가는 우리들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이 분주한 하루가 이제야 끝나간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혹은 다시 비슷한 내일이 올 것에 대한 막연한 우울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오모노 강변에서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하늘빛 무대가 먹지처럼 까맣게 물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은 고대하던 영화나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그것과 닮아있어서, 하루의 끝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마치 뭔가 다른 하루가 다시 시작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본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한 줄기의 별똥별이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아올라 커다란 꽃을 가득히 만들어 냈을 때, 우리는 거기에 붙일 어떤 수식어도 생각해내지 못한 채 그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 2018. 김선우


네 시간 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일. 음악 소리에 맞춰 마치 음표처럼 펑, 펑 터져나가는 셀 수 없는 불꽃들, 그 불꽃들이 바스러져 가고 난 희끄무레한 연기 위로 다시 섬광처럼 번쩍이며 구름을 빨갛게 물들이며 춤추는 빛 무리들, 그 흔적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창공을 항해 중력을 이겨내며 맹렬히 돌진하는 수많은 별똥별들, 찬란하다 못해 눈부신 그들의 파편들.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느라 빳빳해진 목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넋을 잃게 만든 그 거대한 불꽃의 춤은 어떤 의미로는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문득 몇 년 전 오로라를 보겠다고 북반구 끝자락의 어느 도시를 찾았던 기억이 났다. 칠흑 같은 한 밤중에 살갗을 에는 바람을 맞으며 설원을 헤매다 마침내 만난 오로라의 춤은 너무나도 황홀해서, 그만 저 빛과 함께 하늘 저 편으로 사라져 영원히 춤을 출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오마가리의 하늘 위로 떠오른 무수한 빛들은 그 때의 그 황홀함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오색찬란한 불꽃들이 누군가의 손 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들을 예술가라 불러도 마땅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 이 강변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라니. 어쩌면 우리는 예술이라는 것이 언제나 중요한 메시지와 철학이 담겨야만 한다고 스스로와 대중들에게 강요했던 것이 아닐까. 그만큼 오마가리의 불꽃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저 아름다운 불꽃처럼 살아갔으면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깊은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는 저 오색찬란한 빛들과 밤하늘 속으로 흩어지는 신비로운 흰 연기들처럼.     


ⓒ 2018. 김선우


마지막 불꽃이 하늘로 흩어지고, 강변의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향해 신호수가 비행기 착륙 신호를 보내듯 환호와 함께 오색빛깔의 야광봉을 흔들었다. 거기에 대한 답례로 강 건너편의 불꽃 장인들도 일렬로 서서 붉은 빛의 야광봉을 일렁였다. 불꽃놀이로 뜨끈해진 마음은 이렇게 서로 빛으로 연결되며 축제는 막을 내렸다. 일 년에 단 한 번 피는 이 불꽃은 다시 일 년 뒤에 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피어날 것이다.     




축제가 끝난 늦은 밤, 우리는 몇 팀으로 나뉘어 홈스테이를 했다. 처음 만난 이방인인 우리에게 선뜻 방을 내 준 료씨의 집안은 아이들 셋과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다. 불꽃놀이 자리를 마련해준 타카노리씨의 후배라고. 늦은 시간 까지 우리를 위해 기다려준 료와 그의 부인, 아이들이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료의 가족이 베푼 따뜻한 배려 덕분에 염치 불구하게도 2층의 널찍한 아이들 방에서 머물 수 있었다. 


연고가 없는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여기저기에 보이는 작은 집들을 볼 때면 문득 저 사적이고 아늑할 것만 같은 공간에서는 어떤 삶의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을까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들곤 한다. 마치 어렸을 때 곧잘 친구 집에 놀러가곤 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집안 구석구석 채워져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들 속에서 그 가족의 삶의 이야기를 엿보는 일이 즐거웠다. 료의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까지 열심히 조이스틱을 흔들던 패미컴(어쩌면 료가 어렸을 때 갖고 놀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파란색과 하얀색, 빨간색 줄로 장식된 이런저런 메달들, 올이 조금 풀린 격자무늬 카펫,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책상. 이 삶의 작은 흔적들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는 료와 그의 가족들이 소중히 쌓아간 삶의 흔적들 사이에서 단잠을 청할 수 있었다. 불꽃놀이로 뜨끈해진 마음의 온기가 도무지 식지 않는 밤이었다.


고마운 료씨의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작가들. ⓒ 2018. 김선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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