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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y 05. 2022

다시 산티아고로 - 6일 차

화해

레온 -  마르틴  카미노 (san martin del camino)

걸은 거리 : 25km

남은 거리 : 314km


팜플로나만큼 더 큰 대도시인 레온에서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9년 전 기억으로는, 레온에서 출발하던 날 비가 사정없이 쏟아붓는 통에 얇은 비닐 우의에 의지해 걷다가 결국 그 날씨에 이기지 못하고 목적한 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가다가 물에 젖은 생쥐꼴로 온 몸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어느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었던 게 생각났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르틴  카미노. 순례자 여권을 만들 때 순례자 사무소에서는  마을 간 거리와 경사의 높낮이가 대략적으로 표시된 표를 나누어주는데,  표를 보면서 하루마다 얼마나 걸어갈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같은 거리를 걷는다고 해도, 경사의 차이에 따라 체감하는 난이도는 하늘과  차이기 때문이다.





레온에서 산 마르틴까지는 도시 외곽의 도로를 따라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평지가 계속 이어졌다. 오늘은 강한 햇볕과 함께 티 없이 맑은 날씨가 하루 종일 계속된 덕분에, 큰 화물차들이 옆으로 쌩쌩 달리는, 그늘이 거의 없는 큰 도로변을 따라 몇몇 작은 마을을 지나치며 일곱 시간을 걸었다. 별로 볼만한 풍경도 없었고, 지평선 너머 끝없이 펼쳐진 비슷한 길을 따라 걷는 일은 꽤 무료했지만, 첫 번째 순례길에서 거센 비에 가려 발견하지 못했던 풍경들로 다시 새로운 기억을 써 내려가는 일은 유쾌했다. 게다가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지시등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는 수많은 노란색 화살표들 발견해나가는 일은 늘 마음을 안도하게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순례길에서 처럼, 어느 정도의 굴곡이 예비될지 알려주는 표라던지, 내가 선택한 길의 방향이 정말 맞는지 끊임없이 알려주는 노란색 화살표들이 있다면 갈등으로 가득   삶을 살아내는 일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바람을 품게 된다. 9 전에는 그런 부질없는 희망이 주는 위안을 받고 싶어 떠나왔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길들을 되짚어가며 과거의 나와 화해한다. 우리는 여전히 걷고 있다고, 비록 그때도 무지했고, 지금도 무지하며, 오로지 확신할  있는 것은 앞으로도 무지할 것이라는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걷는 일은 즐거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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