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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ze 헬스케어 Aug 19. 2019

음식이 곧 생각이 된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 두뇌에 끼치는 놀라운 영향

이 기사는 뉴욕 타임스에 19년 1월 28일 기고된 기사(https://nyti.ms/2CV37me)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으며 기사의 부분 인용 허가 역시 받았습니다.



마음의 주인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 있는데요. 나쁜 일이 있어도 이에 영향받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소리입니다. 게임을 하다 연이어 죽어서 뒷골이 당길 적에도, 놀러 가려는 날 난데없는 소나기가 내려 우울해질 때에도. 큰 맘먹고 입은 흰 셔츠에 국물이 튀어 기분이 나쁠 때에도 심호흡을 하며 기분을 가다듬자는 말입니다.


다만 이 격언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은 우리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전제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사람 마음은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라 복잡한 뇌내 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을 이해니다. 우울증이 ‘행복해지자!’ 마음먹는다고 나아지진 않잖아요?


여기서 우리 마음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를 추가하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가 매일마다 먹는 음식들입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죠. 심지어 보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너무 당연하고도 행복한 이야기 아닙니까?



장내 세균이 뭔가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물론 점심 메뉴 선정에 실패하면 맛있는 저녁으로 기분을 풀 때 까진 하루 종일 기분이 꿀꿀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을 먹고 자라는 장내 세균들입니다.


장내 세균이란 말 그대로 우리 장 내에 서식하는 세균들을 말합니다. 장내 세균이란 말을 처음 보는 분이라도 아마 대장균에 대해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세균들의 보스라서 대장균이 아니라 대장균이 아니라 대장에 서식하고 있어서 대장균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아무튼 대장균과 같은 세균들이 우리 1000여 종류, 10조 개체 가량이 존재합니다. [1] 건강을 위해 프로바이오틱스와 같은 상품들이 팔리는 이유도 여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생물들이 우리 장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놀랍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장내 미생물은 많은 위장관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장내 미생물을 교체하는 대변 이식술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은 장관 질환에 잠재적인 효능이 있으리라 기대받는 시술 중 하나입니다. 효과가 실질적으로 있는지는 아직 논란거리지만요.



위장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장내 미생물


예를 들어, 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균의 경우 경우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거짓 막 결장염'이라는 배탈을 일으키기로 유명한데요. 해당 질환의 잠재적 치료법 중 하나로 FMT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2] 또한, 염증성 장질환이나 비만, 대사성 질환 등을 개선하는 대에도 FMT가 효과가 있다 알려져 있습니다. [3][4]


FMT가 이렇듯 장관 질환에 효과를 보이는 이유는 장내 미생물 우리 장 내 면역기능의 활성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는데요. 어렸을 때 항생제에 노출이 되면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져 추후 염증성 장질환을 앓을 높아지고, 어렸을 때 장염이나 호흡기 질환을 앓은 사람들의 경우 장내 면역이 활성화되어 염증성 장질환을 앓을 확률이 낮은 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내 미생물이 우리 두뇌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어떨까요? 직관적으로만 생각하면 이해가 잘 가진 않습니다. 우리 내장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두뇌 활동과 어떤 상관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장내 세균과 알츠하이머란 두 단어는 언뜻 들으면 별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2014년 존 크라이언 박사가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펼친 주장을 듣던 사람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다. [5]


장 내 미생물을 포함한 소화기관과 두뇌활동 사이의 연관성을 Gut-brain axis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뇌와 장 사이의 핫라인


아일랜드 코크 대학교 소속 미생물 연구가인 존 크라이언 (John Cryan) 박사는 해당 학회에서 우리 몸속에 공생하는 미생물들이 우리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알츠하이머의 진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당시 학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겐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야기였죠. 장 내 건강에 미생물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야 장내 미생물의 서식지가 장 내이니 그렇다 쳐도, 우리 뇌는 혈액-뇌 장벽 (blood-brain barrier, BBB)으로 보호받고 있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체 내에서도 몇몇 종류의 분자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장벽을 뚫고 장내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우리 뇌와 장내 세균들 간의 관계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산그람 시소디아 (Sangram Sisodia) 박사는 크라이언 박사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몇몇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기본적으로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라는 일종의 단백질 찌꺼기가 뇌에 축적되며 진행됩니다. 그런데 2016년, 시소디아 박사는 알츠하이머에 잘 걸리도록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 쥐에 항생제를 투여하여 장내 미생물을 줄인 결과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덜 형성되었다는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 병의 경과에 장내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결과였죠.


이후 장내 세균과 두뇌 활동이 연관 있다는 연구들은 계속해서 보고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내 세균이 없는 쥐들은 다른 쥐들에 비해 외로움을 더 잘 느낀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는데, 이러한 결과는 해당 쥐들의 편도체(amygdala)에서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생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 또한 2016년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장내 세균 패턴이 정상아들과는 다르다는 연구결과 역시 역시 보도되었습니다. [7]


다만 이런 연구들은 신경학적 질환들과 장내 세균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내 세균 구성이 변화하는지, 남들과는 다른 장내 세균 구성이 질병을 일으키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었죠.


이런 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몇몇 연구진들은 대변 이식술을 사용한 연구를 시행하였습니다. 일례로, 보다 허기를 잘 느끼고 비만이 되기 쉽도록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 쥐에서 변을 채취하여 무균상태에서 자란 쥐의 장에다 이식하자, 장내 세균을 이식받은 쥐 역시 식탐이 많아졌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8] 또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변을 쥐의 장에다 이식하자 해당 쥐 역시 우울증 증상을 보이더라는 연구결과도 있었고, 최근에는 대변 이식이 사람의 우울증을 호전시킬 수도 있다는 결과 역시 보고되었습니다. [9]


결국 건전한 식습관을 통한 좋은 장내 세균 배양이 두뇌건강에 관여한다는 소리일까?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위 연구들을 보면 우리 몸에 이로운 장내 세균을 증진시키고 그렇지 못한 균을 제거함으로써 많은 질병들을 치료하는 미래가 눈 앞에 그려집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장내 세균 연구가 안고 있는 한 가지 한계점을 극복하여야 하는데, 이는 바로 정확히 어떤 미생물이 우리 행동을 변화시키는지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상기한 연구들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우울증 환자의 장내 세균들이 해당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정도이지, 정확히 어떤 미생물이 해당 질병을 유발하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대변 이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한다 치면, 대변 이식술의 특성상 수백 종의 미생물을 한 번에 이식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종의 미생물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규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장내 미생물을 치료에 어떻게 안전하게 이용할지 역시 좀 더 고민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지난 13일, 미국 식약청은 대변 이식술로 인해 다중 약재 내성균, 소위 말하는 "슈퍼 박테리아"가 전파되어 사망한 환자의 사례를 보고하며 대변 이식술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대변 이식술은 C. Difficile에 의한 위장관 감염을 치료하는 실험적 요법으로서 사용되고 있는데요. 미 식약청이 언급한 사례에선 기증자의 대변에 특정 효소를 분비하는 대장균이 서식하고 있었고, 면역 저하 상태에 있던 수혜자들은 이 대장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습니다. [10] 미 식약청은 다중 약재 내성균 감염자들이 기증자로 선택되는 일을 막기 위해 기증자 선별과정을 강화하는 안을 내놓았습니다만, 자칫하면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균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제어하여 치료에 이용할지는 장내 미생물을 의료용으로 이용함에 앞서 반드시 짚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앞서 말한 균들이 우리 몸에 주는 이점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은 해결될 조짐이 보입니다. 장내 세균 전체가 아닌 특정한 장내 세균이 두뇌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보고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미 텍사스 배일러 대학교 소속인 코스타 마티올리 Costa-Mattioli 박사의 연구팀은 특정 미생물을 이식함으로써 자폐 증상을 보이는 쥐들의 반사회성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 약제에도 흔히 쓰이는 Lactobacillus reuteri라는 균을 주사받은 반사회적 쥐들의 사회적 행동이 개선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L. reuteri가 분비하는 물질이 우리 몸의 뇌신경들 중 하나인 미주신경을 자극하고, 이러한 자극이 사회적 활동을 촉진하는 옥시토신 분비를 활성화하는 식입니다. [11] 이와 같이 장내 미생물과 신경학적 증상들 사이의 관계를 시사하는 연구들은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 내 특정 미생물의 존재가 파킨슨 병의 증상인 운동실조를 유발한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습니다. [12] 또한 장내 미생물이 일으키는 신경과학적 증상 이외에도, 최근에는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이 Ruminococcus gnavus라는 균과 크론병으로 대표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등 특정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3]


'인싸 세균' L. reuteri. 얘를 이식받으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되는 걸까요?

 


결론


몸을 가꾸고자 헬스장에 나가면 항상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운동은 식단이 절반이라는 말인데요. 그 말 그대로 우리 식단이 곧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가 됩니다. 근육을 키우고자 하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지방, 탄수화물을 줄이라는 소리이기도 하며,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 건강한 식단을 취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 말에 또 다른 의미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건강한 두뇌, 건강한 장내 세균을 위해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자는 의미입니다. 음식이 우리의 장내 세균에 영향을 미치고, 이 장내 세균이 우리의 두뇌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든다는 말도 옛말이 될지 모릅니다. 미래에는 어쩌면 건강한 장내 미생물이 건전한 정신을 만든다는 말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장내 미생물은 여러 신경학적 질병들의 유일한 원인도 아니고, 프로바이오틱스 섭취가 만병통치 제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우리 장 내 식구들과 우리의 두뇌활동 간의 상관관계가 면밀히 밝혀지고 간단한 식단 조절만으로도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훗날엔 오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Reference


[1] https://www.gutmicrobiotaforhealth.com/en/about-gut-microbiota-info/

[2] Hamilton MJ, Weingarden AR, Sadowsky MJ, Khoruts A.Standardized frozen preparation for transplantation of fecal microbiota for recurrent 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 Am J Gastroenterol 2012; 107:761-7; PMID:22290405;

[3] Gupta, Shaan et al.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in perspective”Therapeutic advances in gastroenterology vol. 9,2 (2016): 229-39.

[4] Weingarden, Alexa R and Byron P Vaughn. “Intestinal microbiota,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and inflammatory bowel disease” Gut microbes vol. 8,3 (2017): 238-252.

[5]https://www.nytimes.com/2019/01/28/health/microbiome-brain-behavior-dementia.html

[6] Stilling, R., Moloney, G., Ryan, F., Hoban, A., Bastiaanssen, T., Shanahan, F., Clarke, G., Claesson, M., Dinan, T. and Cryan, J. (2018). Social interaction-induced activation of RNA splicing in the amygdala of microbiome-deficient mice. eLife, 7.

[7] Vuong, Helen E and Elaine Y Hsiao. “Emerging Roles for the Gut Microbiome in Autism Spectrum Disorder” Biological psychiatry vol. 81,5 (2016): 411-423.

[8] Vijay-Kumar, Matam et al. “Metabolic syndrome and altered gut microbiota in mice lacking Toll-like receptor 5” Science (New York, N.Y.) vol. 328,5975 (2010): 228-31.

[9] Kurokawa, Shunya, et al. “The Effect of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on Psychiatric Symptoms among Patients with Irritable Bowel Syndrome, Functional Diarrhea and Functional Constipation: An Open-Label Observational Study.”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vol. 235, 2018, pp. 506–512., doi:10.1016/j.jad.2018.04.038.

[10] https://www.fda.gov/vaccines-blood-biologics/safety-availability-biologics/important-safety-alert-regarding-use-fecal-microbiota-transplantation-and-risk-serious-adverse

[11] Sgritta, Martina, et al. “Mechanisms Underlying Microbial-Mediated Changes in Social Behavior in Mouse Models of Autism Spectrum Disorder.” Neuron, vol. 101, no. 2, 2019, doi:10.1016/j.neuron.2018.11.018.

[12] Sampson, Timothy R., et al. “Gut Microbiota Regulate Motor Deficits and Neuroinflammation in a Model of Parkinson’s Disease.” Cell, vol. 167, no. 6, 2016, doi:10.1016/j.cell.2016.11.018.

[13] https://hms.harvard.edu/news/microbiome-malefactor?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utm_campaign=hms-twitter-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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