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에 있어 진행할 용기와 사고방식을 심어준 당사자인 아내에게 고마움을 내비치며 글머리를 열어본다.
아내와는 2012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한가운데서 만났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껏 나를, '길에서 주운 사람' 혹은 '그 찰나만 잘 비켜갔으면.. '이라 빈정대며 놀리곤 한다. 당시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한 27살 예비 신입사원이었고, 그녀는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해 낙담한 31살 회사원이었다.
한 명은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른 하나는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려 떠난 각자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그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만났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 Santo domingo
하루가 저물때 즈음이면 마을 어귀에 다다른 자전거 여행객. 그런 내가 수많은 순례자들을 지나치는건 일상이었지만, 그 날 마주친 아내 만큼은 유독 뇌리에 남았다. 많은 미사여구가 필요없을 만큼 참 예뻤다. 그 찰나에 마음을 빼앗겨 이끌리듯 들어간 마을은 촘촘한 고딕양식의 건물 사이로 찬 냉기가 서려있는 곳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순례자 공용숙소(알베르게), 그 문을 열 때의 떨림은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살짝 흥분 된다. 그리고 발을 들인 순간 바깥 공기와 비견될만큼 따뜻한 실내의 온기가 순간 몸을 감쌌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는 카운터 앞에 일행과 같이 있었다. 언뜻 들려오는 한국말에 자신감을 갖곤 '한국인 이신가요?' 라며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냈던걸로 기억한다. 평소 생각치도 않던 동포애를 간절히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거울에 비친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은 바깥 기온이 어느정도인지 말해주는 듯 했지만 그 순간 만큼은 꼭 찬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재일교포였다.
함께한 그 날 저녁 식사가 맛있었는지 우리가 나눈 담소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여행객에 혹여 경계심을 가질까 노심초사했던게 이유인듯 싶다. 다만, 설거지를 끝내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던 그 순간이 못내 아쉬웠던 것 만큼은 분명히 기억 한다.
다음 날 봇짐을 동여 메던 내가 자전거를 버리고 같이 걸을까? 잠시나마 고민했던건 내 마음에 비춰보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또 작별인사를 하고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어떻게 다시 만날까 라는 고민이 여행 내내 머릿속을 꽉 채웠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김어준의 재미난 일화가 있다. 파리에서 배낭여행하던 당시 양장점에 걸린 휴고보스 정장에 반해 전재산을 털어 양복을 맞췄고 이후 노숙을 했다고 한다. 성급한 결정에 덜컥 겁이 나던 이튿날부터는 한 호텔의 호객(삐끼) 행위를 도와줬는데, 휴고보스 양복을 입고 있던 덕에 사람을 쉽게 낚을 수 있었다 한다. 거기서 번 돈으로 현지 게스트하우스까지 차려 여행 말미엔 수중에 천만 원을 들고 나왔단 내용으로, 행복이란 쌓아둘 수 있는 게 아닌 현재 행동으로 취해야 한다는게 그 일화의 주제였다.』
여행 말미, 바르셀로나 정 중앙에 있는 광장에 앉아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달리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었고 수많은 관광객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번잡한 곳 이었다. 옆에 커다란 맥도날드가 있었지만 선뜻 들어가길 망설이던 가난한 여행객의 하릴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 때 그녀에게서 열흘 뒤 파리로 간다는 카톡을 받았다.
생각은 크게 필요치 않았던 것 같다. 오전 내 망설이던 맥도날드를 가볍게 지나쳐 언덕배기에 있는 고급백화점으로 들어갔고 수중에 가진 400유로 전부로 옷을 샀다. 서둘러 파리로 넘어간 내가 그녀를 기다리기까지 열흘 남짓, 그 마음가짐은 김어준의 휴고보스 못지 않았고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 인생을 통틀어 성공한 최고의 투자였다.
조금 과장을 덧붙여 세느강변이 한강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때쯤 그녀가 파리에 도착했다.
꾀죄죄했던 내 첫모습과는 다른 인상을 갖길 바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했을땐 , 그녀는 등산복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예뻤고 난 등산복을 벗었음에도 마음이 떨렸다.
누가보면 파리 현지인것 마냥 서툴렀지만 익숙한 척, 서두르고 싶었지만 점잖은 척 보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파리의 연인으로 발전했다. 물론, 그게 파리의 분위기 덕분이었는지 아님 전재산과 바꾼 옷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내와 결혼을 한건 그로부터 2년 뒤인 2014년, 첫 데이트를 했던 장소인 파리에서였다. 어느 고즈넉한 교회 앞에서 서로 써온 편지를 읽음으로써 앞으로의 함께할 삶을 언약했다. 길에서 만났던 연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단출한 결혼식이었고 그 후 그렇게 7년을 함께 걸어오고 있다.
발길을 돌릴까 멈칫했던 그 순간 용기 내 마을로 들어간 덕분에 지금의 반려자를 만났다. 정작 본인은 그 길을 걷지 말았어야 했노라며 자식 대신 남편을 대학 보낸다 말하곤 하지만, 그 속에 날 향한 배려와 믿음 덕분에 내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단 걸 걸 잘 안다. 내 인생에 있어 아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어떤 사람인지는 종종 얘기를 해 갈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때론 희박한 가능성에도 발을 떼야 새로운 연이 생기듯, 늦은 것 같을 때 한시 빨리 움직여야 새로운 길이 펼쳐짐을 알려준 동반자이자 이정표로서 아내와의 만남은 그 의미가 깊어 첫 장으로 장식해 보았다.
누가 뭐래도 길은 걸어봐야 안다. 내가 그렇듯 말이다.
p.s 예전 글에선 회사에 내 신분이 노출(괜한 우려)될까 개인적인 얘기를 자제했는데 이젠 참 자유로워 좋다
*알베르게 :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머무는 공용 민박으로, 보통 마을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한 곳이 있다. 사설 민박보다 저렴해 순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