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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Dec 31. 2020

밸런스

햇빛

8년전

지하철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 그늘진 아파트 사이로 간간히 비추는 햇볕이 감질나게 느껴진다. 이내 지하로 걸어 내려가 사람들로 가득 찬 객실 문이 열리면 그 안 가득 찬 각자의 숨 냄새가 한대 섞여 날 맞이한다. 짙은 향수, 누군가의 젖은 샴푸 향, 때론 정장 속 짙게 벤 담배냄새를 비집고 들어가 그 틈에 끼여있다 보면 그렇게 내 출근길이 시작된다.

다닥다닥 붙은 서로의 몸으로 흔들림을 지탱하다 보면 어느새 잠실철교 위를 지나가는데, 한강 너머 비춰오는 그 찰나의 햇살은 마치 그득한 콩나물 시루에 붓는 시원한 물 바가지 같았다. 1분 남짓 마주하던 창밖의 풍경마저 이내 지하로 바뀌고 나면 그렇게 내 짧은 광합성은 끝이난다.

바야흐로 8년 전, 내 신입사원 시절 매일 야근은 당연했고 일과 후 이어진 회식마저 끝날 무렵 돌아가는 잠실철교의 햇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칠흑 같은 유리창 속 내 지친 모습만 매일 비칠 뿐이었다.


갈증

'으레 회사생활은 그런 거다'라는 선배의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햇빛 한줄기 보지 못하는 내 일상 속에서 나는 조금씩 생기를 잃어갔다. 자정이 돼서야 집에 오면서도 사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내 삶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몰랐다.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기에 그저 내가 거쳐야 할 관문이라 생각했지만 차마 마음속으론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마주친 퇴근길 한강에서 난 햇빛에 대한 강한 갈증을 느낌과 동시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했다.


방점이 되다.

부장의 눈치를 다들 보던, 별다를 일이 없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업무가 느슨해진 틈을타 부장이 회식 선전포고를 했고 반항 할리 없는 우린 속수무책으로 따라가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게 선배들이 말한 '사회생활'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내게 그날만큼은 햇볕을 찾겠노라 다짐한 방점을 찍는 날이었다.

일과가 끝날 무렵 홀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과 가방을 챙기는 내 모습을 본 선배는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저는 오늘 회식 불참입니다!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약 10여 명이 있는 사무실 정적 속 막내였던 내가 선전포고를 던졌다. 아마 평소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였으리라. 늘상 부장의 공격에도 속수무책이었지만 신입사원이 던지는 파급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말을 하고도 선배들을 둘러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혹여 다시 부르진 않을까? 종종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나서며 느낀 그 찰나의 흥분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야자를 땡땡이치던 학창 시절의 흥분과는 분명 달랐다. 그건 행복도 기쁨도 아니었으며 일종의 죄책감과 불확신이었다. 한마디로 그건 회사원의 TABOO(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내 기준점이 되었다.


중심

그날 집에 가서 무얼 했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명확한 건 한강 너머 시뻘겋게 지는 해를 마주한 첫 퇴근길이었다는 것이다. 나쁜 추억을 지닌 물건을 종종 장작불에 던져버리듯, 그간 묵혀왔던 내 갑갑함 또한 붉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그간 내가 느꼈던 갈증은 단순히 햇빛이 아닌 누리지 못한 권리가 아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랬다.


구글

그 후 내 회사생활을 요약하자면, 회식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의 약 7년 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결혼, 여행 등 회사와 구분될 수 있는 개인사는 오롯이 분리시켜 사회생활을 했다. 이덕분에 상사들로부턴 조직문화를 저해하는 별종이란 날 선 비판과 더불어 나처럼 살고 싶다는 후배들의 선망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 그렇게 불린 당시 내 별명이 현대그룹의 '구글'이었다.


밸런스

퇴사 무렵에는 내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분명 일부 상사의 입이 근질거렸음은 당연지사지만 전반적인 기조가 많이 바뀔 무렵이었다. 기존의 taboo는 이제 권리가 되었고 상사들의 강요가 되려 taboo시 될 즈음 난 회사를 나왔다. 그제야 회사원들의 무너졌던 밸런스가 조금은 바로 서지 않았나 싶다.


교정

대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균형(밸런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예전엔 그게 life balance 였다면 이제는 body balance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말이다. 사실, 인간의 몸이 중력에 대항해 두발로 서있는 건 상당한 고차원적 행동으로 생득적 능력이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뿐 실은 엄청난 노력을 요한다. 어렸을 적, 건강하던 몸이 서른 즈음부터 하나둘 삐그덕 대는 것 또한 거기에 이유가 있다. 다들 바로 서있지 못하기에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것이다. 회식이란, 시간이 쌓아 올린 사회의 관습처럼 개인의 습관 또한 중심을 쉬이 앗아가 버린다.


교정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를 처음부터 교정하고 중심을 세우는 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근골격계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교정과 운동을 병행해 개인의 중심을 세워주는 것 말이다. 사실 대부분 환자의 원인은 거창하지 않다.  앉는 습관, 수면자세 등 삶 속 사소한 습관이 쌓여 큰 중심을 잃어버리기에 원인만 파악되면 균형은 의외로 쉽게 복구할 수 있다.

햇볕이 없는 삶이나 두발로 설 수 없는 삶이나 모두 당연한걸 못 누린다는 '결핍'이란 공통점이 있기에 난 그런 결핍을 채우는 삶을 살고 싶다. 회사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어 결핍을 채웠듯, 재활치료사로서 타인의 결핍을 채워줄 그날이 얼른 오기를 마음속 깊이 다시 한번 갈망한다.


*결혼식을 아내와 처음 만난 파리에서 단둘이 올렸다. 상사들에게 왜 인사를 다니지 않고 청첩장도 안 돌리냐는 일부 꼰대에게 화답하고자 결혼식 장소를 '파리 에펠탑', 교통편을 '보잉 747'로 적어 사내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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