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원짜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다시 출발점으로
3억 원짜리 물리치료사 면허를 취득했다.
지난 3년간 이 날이 오면 서두를 어떻게 열까? 고민했는데 역시나 돈만큼 크게 와닿는 건 없는 것 같다.
'기회비용'
회사를 다녔더라면 내게 생겼을 이 돈은 먼 미래를 위한 투자금이 되었을 수도 있고 , 혹은 그간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돈이 되었을 수도 있다.
수많던 선택지 대신 도전한 대가로 서른 중반 때 아닌 궁핍을 겪었으며 더불어 와이프에겐 말도 못 할 미안함만 쌓였다.
그만큼 내 기회비용은 크고 무거웠다.
'여보, 합격 발표 언제야?'
이 한마디면 될걸 아내는 궁금해하지도 또 묻지도 않는다. 그 짧은 말이 나를 옥죄일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당신의 답답함 정도는 능히 견디려 한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발표 당일 네시 즈음 카톡으로 결과가 온다 했다.
덕분에 그날은 하루 종일 시답잖은 '카톡' 소리에도 내 심장이 요동치기 충분했다.
'여보, 우리 바다나 보러 갈까?'
발표 당일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아내를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뜬금없는 데이트가 좋았는지 아내는 연신 재잘재잘 수다거리를 늘어놓고 , 난 맞장구치며 웃었지만 사실 온 신경은 핸드폰에 뺏겨있었다.
'여보 무슨 생각해'
내 공허한 리액션을 눈치챘는지? 살짝 토라진 모습이다.
차마, 오늘이 발표날이라 얘기 못한 건 이 부담감을 지어주기 싫은 내 나름의 배려였다.
그즈음이었을까? 오후 4시가 갓 지날 무렵 '카톡' 하고 알림이 왔다.
애써 덤덤한 척 핸드폰에 손을 갖다 대던 그 순간은, 엄밀히 말하자면 3억짜리 배팅 결과가 나오는 찰나였다.
'..... 님은 합격하였습니다'
긴장감과 흥분이 뒤섞인 그 감정을 잠시 숨긴채
배시시 웃으며 아내 손에 핸드폰을 쥐어줬다.
토라진 채 건네받은 아내는 이내 울상이 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군다.
우리 엄마도 나 대학 갔을 때 울지 않았는데.. 다 큰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그 심정은 오죽했을까.
처음부터 선뜻하라던 그 큰 아량이 꼭 힘들지 않았을 거란 법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3억짜리 배팅 결과가 나던 순간이었다.
순수하게 연봉과 학비 정도만 계산한 게 3억 원이었다. 거기다 아내의 노고 삯과 마음고생 값은 채 절반도 반영 못한 내 싼 면허증이다.
살면서 우리 부모님은 효도하란 말을 하신 적이 없다. 당신들 선택으로 날 낳았으니 19살까지만 보살펴주겠단 걸 입버릇처럼 하시던 분들이었다.
근데 와이프는 그 선택조차 없이 내게 베풀었다.
그러니 부모 사랑에도 부채의식이 결여된 내가, 이 큰 아량과 배려를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까? 익숙지 않은 채무가 분에 넘치고 감사하다.
이제 다시 출발점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너무 많은 고생과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그 시작도 아내의 멋진 결정이 없었다면 가능조차 못했다.
꾸준히 발전할 거다. 이 면허증을 시작으로 더 큰 고비와 좌절이 있겠지만 아내의 눈물이 그 무게가 가벼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갚아 나가고 싶다.
말 그대로 엔젤 투자자인 내 아내에게 그 기쁨을 온전히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