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바이스>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President)'는 부통령 혹은 부사장을 일컫는다. 딕 체니는 2000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부통령이 되었다. 영화 <바이스>는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통 한 인물을 다루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우리는 국가의 대통령이나 전쟁의 장수, 발명가, 개발자와 같은 총책임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어떤 집단 혹은 사건의 꼭대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보통 총책임자가 그 일에 정통하고, 집단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스>가 바라보는 시선은 꼭대기가 아니라 꼭대기 근처를 향한다.
꼭대기에 대한 흐트러진 시선에서 <바이스>는 독특한 관점을 도출해낸다. 이 관점은 아담 맥케이 감독이 전작, <빅쇼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바르게 삐딱한' 것이다. 이 '바르게 삐딱한' 것이란 특별하고 극적인 사건을 특별하지 않게 묘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빅쇼트>와 <바이스>는 국가가 부도에 이를 수 있는 상황,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이 두 가지에는 수많은 사항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영역 곳곳이 연관점을 가진다. 이러한 성질은 한편으론 다양한 확장성을 제공하지만, 때로 이야기의 맥락을 잡기 힘든 약점을 드러낸다. '바르게 삐딱한' 것은 익숙한 이야기 방식 위에 이런 유별난 사건들을 묘사함으로써 생겨난다. 이 방식은 사건 묘사와 풍자를 동시에 엮어내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며 독특한 영화적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이 페이크 다큐는 딕 체니의 나쁜 점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 다큐는 딕 체니의 삶을 따라간다.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성장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순히 연대기를 따라 흐르지 않는다. <바이스>는 딕 체니의 중요한 계기들을 짚어낸다. 하나의 계기는 하나의 시퀀스가 되고, 하나의 상징으로 요약된다. 이 시퀀스들은 서로 깊게 연결되는데, 이 연결을 만들어 내는 건 리듬감이다. 리듬감은 수십 년을 아우르는 시간을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 타임 안에 말끔히 집어 넣는다. 각 시퀀스는 자신의 상징을 통해 분위기를 갖고, 리듬감을 통해 전체적인 구성을 갖춘다.
상징과 리듬감에도 '바르게 삐딱한' 관점이 들어온다. 익숙해 보이는 상징은 양면으로 해석된다. 하나의 상징은 관객의 해석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드러낸다. 감독은 과도하게 잘못을 부각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감독은 '바르게' 보이도록 연출해낸다. 하지만 이 상징과 리듬감을 보조하는 연출들은 모두 삐딱하다. 인물에 짙게 드리운 조명, 인물의 의도를 알 수 없는 표정들, 카메라가 거리를 둔 채 보여주는 행동들은 '바르게' 표현되지 않았다. 페이크 다큐로서 가질 수 있는 특징들이 영화적 표현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 "현실에 가장 가깝게" 만들었다는 감독의 전언처럼 영화는 '바르게' 만들어졌지만, '삐딱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삐딱한' 언급들은 상징과 리듬을 깊게 파고든다. 뜬금없다고 생각할 만큼 급격히 삽입되는 장면들은 보다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이라크전에 관한 내용을 보여주다가 식탁 밑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방식, '낚시'라는 테마가 반복되는 심상은 이미지의 교차를 통해 "사실" 위에 "의미"를 덧댄다. 그리고 역시 이러한 이미지의 위상을 결정하는 것은 관찰자다. 즉, 관객이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사실"에 씌워지는 "의미"가 변화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영화는 미국의 정치 행태를 풍자하면서도 직접적인 비난과 공격은 비껴간다.
<바이스>는 정치가 가지는 다중적 의미를 적절하게 서술하며 자신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그리고 영화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점이 서로 교차되고, 여러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과정은 부담스럽지 않은 빠르기와 명확한 상징적 기점들을 통해 차분히 정리된다. 정교하게 짜인 시퀀스 구성은 영화적 완성도를 통해 의미의 확장에 기여한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은연중에 자신의 말을 담아낸다. 말은 말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관람을 마치고,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는 사실을 본 것인가 이야기를 본 것인가?', '나는 무엇을 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