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겉치레의 뒷면

영화 <이레셔널 맨>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B8%C1%C1%DF%C7%D1.jpg?type=w1 우디 앨런 연출 46번째 장편 영화...


가벼웠고 발랄하기까지 하다. 우디 앨런의 46번째 연출작이다. 무려 46번째. 어느새 50개를 향해 달려나가는 우디 앨런의 끝없는 열정과 스토리들은 언제쯤 막을 내릴까. 이 영화 또한 우디 앨런의 영화 모음집에 한 리스트를 차지하기에 스스럼이 없다. 보고 나서 떠오른 생각. '아 우디 앨런의 영화구나' 호아킨 피닉스, 엠마 스톤이라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게 되어 보았다. 그리고 남은 건 우디 앨런의 영화란 생각뿐이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언제나 아이러니하게 시작한다. 가령 [미드나잇인파리]의 설정, 낭만을 꿈꾸는 상업 작가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철학과 교수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과연 이 우울한 철학교수는 왜 비이성적(irrational)이라는 소릴 듣는 사람일까? 철학은 이성적(rational)인, 이여야만 하는 학문 아니던가. 어떤 절망적인 사연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어 세상을 한탄스럽게 바라보게 하는가. 그곳에는 비이성적인 일들이 있지 않을까.

%BF%EC%BF%EF%C7%D1%BF%A1%C0%CC%BA%EA.jpg?type=w1 철학교수 에이브 루카스


그의 말은 믿음직해 보인다. 철학교수고 꾀나 이름이 알려진 교수라고 한다. 왜 촌에 있는 대학교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교정은 그에 대한 소문으로 가득하다. 이전에 학생들이랑 관계를 가졌다느니 하는 추문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운전 중에 생각에 가득 잠겨 싱글몰트위스키를 들이키는 그에겐 무언가 치명적인 낭만이 가득해 보인다. 무언가 잘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의 우울함이 매력의 근원일 수도 있다. 허망함을 베이스로 하는, 발 디딜 곳 없는 근원 말이다. 빠져나올 수도 없는.
질은 그런 에이브가 흥미롭다. 남자친구에게 새로운 교수의 이야길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흥미롭다. 어쩌면 질은 이미 에이브의 매력에 빠진 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삶의 의도를 아는 듯하고 존중하는 것에 대한 방법을 통달한 듯한 그의 피로해 보이는 매력에 말이다. 그렇게 생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 에이브와 잃어버리는 그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질이 만나며 비이성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진심이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진심을 이야기한다. 한치의 거짓도 없이.
거짓 없는 말들은 부딪친다. 마치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볼 때 언제나 맞는 말들은 부딪힌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과 내가 거짓말을 하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와 '사람을 죽이는데 동조하면 안 된다.'는 충돌한다. 이런 충돌은 에이브와 질의 충돌과 유사하다. 에이브가 절망을 극복하는 것은 질이 더 이상 에이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함을 의미한다. '에이브의 절망'이 '질이 에이브에게 매력을 느낌'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생각해보면 문득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건은 아이러닉이 겹치며 이루어진다. 이전,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그러했듯 이 영화의 주인공들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란다. 허무에 빠진 철학과 교수이다. 우리는 철학자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삶에 대해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통찰력 깊은 명언들은 종종 와 닿기 때문일까. '잘 사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만한 철학교수가 왜 절망에 빠졌을까. 왜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할까. 그가 과하게 '이성적'이기 때문일까?

%BF%A1%C0%CC%BA%EA%BF%CD%C1%FA.jpg?type=w1 선생님과 제자의 지역 탐방 시간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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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합리는 또 무엇이고. '맞는 생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합리'적인 생각은 이성적으로 맞는 생각이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했을 때 '맞는' 것이고. 그래서 온전히 이성적인 건 없다.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개개인의 생각이 고루 달라 아무리 맞다고 생각한 것이라도 어딘가에선 틀리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틀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자기 합리화. 자기에게 합리화를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하는 '맞는 생각'이라는 설득이다. 에이브가 생의 의지를 되찾은 것은 나빠 보였던 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임으로써다. 죽이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었기에 죽어도 마땅하고 에이브는 이야기한다. 그에게 맞는 생각은 그런 것이다. 나쁜 이가 죽어 사회가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졌고 그것을 나의 손으로 해결하여 법의 테두리에서 고통받는 이 없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된다. 에이브는 스스로가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의 욕구를 불태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절망으로부터 나오게끔 도와준다고 한다.
질은 신뢰가 가득했다. 절망에서 나와 자신을 받아들이던 에이브를 바꾸어 간다고 믿었다. 그와 함께한 첫날밤처럼 자신이 그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희망에 젖은 에이브를 보며 질은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그저 밥 먹으며 했던 공상이나 루머 같던 소문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상상은 현실이고 심지어 현실로 이루어낸 자가 인정도 해줬었다. 그리고 에이브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더 이상 생각하고 말게 아니다. 합리적인 추론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는 틀렸다. 질의 말처럼. "이건 그냥 아닌 거라고요.

%BF%A5%B8%B6%BD%BA%C5%E6.jpg?type=w1 빠져나올 수 없는, '없음'에 빠진 그녀


합리적이라 믿었던 것이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 윤리적인 것에 대해 수업하는 에이브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합리적이라 하는 것처럼 합리는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의 이성은 불안하고 편협하기 그지없다. 무시했던 공상과 루머는 사실일 때도 있던 것이다. 질은 처음 자신도 잘 모르는 에이브의 소문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구한다. 그의 친한 친구가 테러리스트에게 죽었다는 소문. 그러나 사실 그의 친한 친구는 지뢰를 밟고 죽은 것이었다. 또한 그녀는 에이브의 절망에도 낭만을 비추어 빠지기도 한다. 러시안룰렛으로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무모한, 틀린 행동마저도 희망으로 바꿔야 할 절망의 부분으로 생각할 만큼.
에이브는 마치 포커 게임을 하듯 자신의 범죄가 어느 정도는 대단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에이브에게 매몰차게 틀렸다고 말한다. "그냥 틀린" 에이브에게 격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합리적이고 맞는 말만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철학 교수에게 그냥 틀렸다고 말한다. 에이브처럼 매몰된 '합리적임'에 빠지지 않고. 합리적이어야 했던, 합리적이지 못한,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믿은 남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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