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거 스플래쉬>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다코타 존슨,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주연의 8월 개봉작이다. [비거 스플래시]는 1969년 작 [수영장(태양은 알고 있다]와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네 명의 남녀가 모여 서로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용으로는 뻔한 치정극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샤갈의 그림이 떠오른다.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렸던 샤갈처럼 배우의 색채를 판텔레리아 섬을 캔버스 삼아 골고루 뿌려놓는다. '세련됬다'라는 평가는 모두 이런 배경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효과가 아닐까 한다.
지중해에 위치한 판텔레리아 섬은 여유롭다. 마리안과 폴은 나체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만큼 여유롭게 지낸다. 그런 그들을 덮치는 '스플래시'는 해리와 페넬로페다. 네 사람이 만나면서 관계는 다채로워진다. 마주 보던 마리안과 폴의 시선은 서로에게만 머무를 수 없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 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해리는 모두에게 파동을 일으킨다. 마리안은 해리가 반가우면서도 폴에게 기댄다. 폴은 해리를 못내 받아들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페넬로페는 마리안과 해리 그리고 폴 사이에 묘한 균형을 맞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점점 격렬해지고 파도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눈앞이 흐려지는 '시로코의 먼지 바람'처럼 한치 앞도 모를 감정으로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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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예고편이 마음에 들었다. 네 명의 배우가 뿜어내는 관능적인 매력도 보기 좋았다. 샤갈의 색채처럼 뿌려진 욕망은 진하다. '성대 수술 후 회복 중인 락스타'라는 설정의 마리안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도 그녀의 매력은 충분했다. 치정극이 주된 내용일지라도 표현해 내는 모양새가 좋았다. 각각의 욕망들은 점점 진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욕망'을 보여주는 영화다.
마리안은 말 못하는 사랑이다. 해리에겐 집착의 대상이 되고, 폴에겐 질투의 대상이 된다. 마리안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을 즐긴다. 사람들이 가득 찬 스타디움 공연에서 거대한 행복을 느낄 만큼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즐기고 그것을 존중한다. 성대 결절이 올만큼 노래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받는다. 그녀에게 찾아온 '파동' 해리는 과거의 연인이다.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소개해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해리가 '시로코의 바람'을 지나며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에 흔들린다. 파동에 물결이 친다. 그러나 폴과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낸다. 해리도 소중하지만 그녀에겐 폴이라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
해리는 쉼 없이 떠들어 댄다.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고 흥겨워 춤추는 그는 스스로도 솔직하고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만큼 그는 직설적이다. 또한 하루 종일의 일상에도 지치지 않는 그다. 깊은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 그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폴에게 "마리안을 보낸 건 내 최악의 선택이었어"라고 말하는 그는 마리안에게 집착한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지치지 않고 표현한다. 대답이 없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그가 보여준 아래의 사진의 진중한 눈빛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폴은 그런 해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해리가 꺼림칙하게 본다. 언제나 해리 앞에선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런 해리가 자신의 자살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것이다. 유서도 쓰지 않았다는 자살 이야기, 자신을 비방하는 이야기. 그러나 사실 폴은 유서에 '마리안'이라는 이름만 적을만큼 마리안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는 해리에게 질투를 느낀다. 마리안에게 해리한테는 말할 수 있음을 숨기라고 할 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질투는 비극을 부른다.
"매력이 있는 것은 모두 좋아하거든요."라고 말하는 페넬로페는 유혹의 화신이다. 그녀는 마리안에 대한 폴의 사랑을 가지고 싶어 한다. 해리와의 관계에서도 깊은 스킨십을 하고 폴의 곁을 맴돌며 가슴이 다 보이는 옷을 입는 그녀는 유혹하고픈 욕망이 가득하다. 작은 바닷가에서 나체로 누워있는 장면은 그녀의 색채가 강렬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리고 유혹은 질투에 눈이 먼 자에겐 치명적으로 다가간다.
'시로코의 먼지바람'은 시야를 흐려 사물의 분간이 힘들게 한다. 감정은 먼지바람을 지나며 소용돌이친다. 소용돌이의 끝에 친구였던 해리와 폴이 만난다. 질투와 집착은 비슷한 면이 많은 것처럼 해리와 폴도 그렇다. 그리고 둘 다 폭력적인 면이 있다. 해리와 폴의 욕망은 강하게 부딪힌다. 마리안에 연연하는 해리를 벌레 보듯 아는 폴과 자신의 딸과 잔 폴을 용서할 수 없는 해리다. 격렬한 몸싸움의 끝에 한 명은 사거라 들어버리고 만다. 어떤 방향을 향하던 감정들은 이제 모호하다. 먼지보다 앞을 보기 힘든 폭우가 내린다.
죄책감, 사랑, 집착, 질투, 유혹은 섞이고 섞여 복잡하게 얽힌다. 폴은 해리가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스럽지만 죽이고 싶진 않았다. 마리안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서장)가 있다는 것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페넬로페는 알고 있던 외국어도 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어"했고, 떠나는 길에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판텔레리아 섬의 이색적인 분위기와 에너지는 좋은 캔버스로 복잡하게 섞이는 색채들을 받아낸다. 먼지와 섞인 폭우가 폴과 마리안의 앞 유리창을 마구 휘젓는다. 우중충한 색채다.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웃음이 난다. 감정과 욕망은 폭우처럼 뒤섞여 확실히 잡아낼 길이 없다. 그저 폭우를 맞고 웃거나 우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