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파도로 지울 수 없음에도, 여전히

영화 <환상의 빛>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C6%F7%BD%BA%C5%CD.jpg?type=w966 재개봉한 [환상의 빛] 1995년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인 [환상의 빛]이 재개봉했다. 최근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며 같이 보게 된 작품이다. 감독의 초기작인 만큼 그의 영화에서 보이던 내용의 전개나 롱테이크로 찍어내는 방식 등을 엿볼 수 있다. [환상의 빛]은 [태풍이 지나가고]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작품이 표방하고 있는 공간의 분위기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냉장고의 냉동실 문을 열려면 식탁에 앉은 사람이 머리를 숙일 만큼 좁은 도시 아파트의 [태풍이 지나가고], 고즈넉한 시골의 일상을 보여주는, 넓고 광대한 자연을 따라가는 카메라가 담아내는 [환상의 빛]의 공간은 확연히 다르다.
[환상의 빛]에서는 '환상'스러운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물에 비친 반영이나,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가며 역광을 받는 장면이 '환상'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신비로운 느낌과 편안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묘한 분위기로 배경을 채운다. 또한 전체적으로 어두운 장면들이 많다. 어두운 장면 속에서 인물은 앉아 있거나 눈을 뜬 채 잠들지 못한다. 혹은 빛을 받으며 창을 통해 밖을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집안과 빛을 받는 인물의 얼굴은 대조되고 강조된다. 빛은 그렇게 영화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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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8%AF%BF%B5%C0%C7%B1%D7%B8%B2.jpg?type=w966 비슷한 두 장면


이미지들이 장면들을 지배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흐릿한 심상들과 상징만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움직임이나 가만히 있는 것을 보여준다. 움직이는 아이들, 청소하는 유미코의 동작들을 찬찬히 지켜본다. 그리고 유미코의 얼굴 가득 빛을 맞는 것을 본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할지 묵묵히 지켜보게끔 한다. 이런 식의 전달은 극의 분위기를 가져다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마치 유미코가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의 축축한 바닷바람처럼 어두운 공기가 밀려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어쩌면 약간은 우울할지도 모르는 영화다. 말소리보다 파도 소리가 장면 가득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뜀박질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대사도 많지 않다. 장면을 지배하는 대사는 종종 침묵이다. 그러나 때론 그러하듯,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리고 오랜 생각 끝에 나온 말들은 기다림과 농도만큼이나 마음에 와 닿는다. 말의 농도는 깊어진다. 그들이 침묵한 만큼.

%C3%CA%B7%CF%C0%DA%C0%FC%B0%C5.jpg?type=w966 훔쳐서 초록으로 색칠하는 자전거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어릴 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떠나버린 날처럼 떠난 전 남편 이루코의 자살은 유미코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평범한 일상을 나누며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 남편의 죽음은 그녀가 말이 없는 성격으로 바뀌게 할 만큼 충격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남편과 살던 오사카를 떠나 새로운 가족과 바닷가 마을에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바닷가 마을엔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린다. 시끄러운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상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맞이하도록 한다. 평범한 새 가족을 위해 그녀는 묵묵히 집안일을 해낸다. 그렇게 잔잔한 파도가 치듯 다시 평범하게 산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들린 오사카에서 그녀는 자주 가던 카페로 가서 전 남편이 죽은 날 그곳을 들렸다는 사실을 듣는다. 평범하게 말을 나누다가 가버렸다는 이야기는 왜인지 모를 전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더한다. 그의 일터였던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휑하니 버려져 있고 옛집에는 고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에 살던 때 크게 들리던 옆집의 라디오 소리는 전 남편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리였을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빛만이 가득히 찬 옛집에 있다. 고요한 집에 붉게 물든 공기만이 내려앉는다.

%B0%AD%B7%C4%C7%D1%BC%F8%B0%A3.jpg?type=w966 영화에선 색감이 이렇게 밋밋하지 않던데..


새벽부터 게를 잡아준다고 바다로 나간 토메노 할머니는 태풍우가 몰아치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유미코는 게를 잡으러 간 토메노가 걱정된다. 어쩌면 그녀에겐 잡지 못한 세 번째 이별인지도 모른다. "헤엄쳐서라도 돌아올 거야"란 말처럼 토메노는 게를 잡아서 유미코의 집으로 돌아온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를 이겨내고 돌아온 것이다. 잔잔한 파도 같은 일상에 평범하게 인사를 건네며 떠난 자신의 할머니와 전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는데 토메노는 폭풍우가 퍼붓는 바다에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문득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떠오른다.
시끄러운 일상에 잊었다고 생각한 의문이 떠오른다. 파도들이 쓸어간 해변가에 홀로 남은 곶처럼. '이루코는 왜 자살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 그녀의 침묵 속에서 이루코의 벨 열쇠고리처럼 울린다. 그러나 어떠한 기억도 의문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초록 자전거도, 별다를 바가 없던 하루의 인사도, 이루코가 챙겨갔던 우산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그날 이후 남은, 죽은 시신조차 볼 수 없었던 이루코의 소지품, 벨 열쇠고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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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던 유미코는 버스를 타지 않고 장례 행렬을 따라간다. 아마도 이루코의 죽음을 머릿속에 그리며. 바닷가에서 태우는 것을 그녀가 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검게 불타 사라져가는 연기는 화면의 왼쪽, 유미코는 중앙, 새 남편 타미오는 오른쪽에 있는 장면이다. 불타 사라져가는 연기는 마치 이루코와도 같다. 그리고 그녀는 타미오를 따라간다. 떠난 이로부터 멀어져 간다. 흩어져 가는 연기를 뒤로 한 채 무언지 모를 이유를 뒤로한 채 타미오를 따라간다.
타미오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고향을 찾아 떠나고, 기찻길을 따라 걷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 바다가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세상의 풍파가 다가와서 우리에게 시련을 준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마음에 남아 잊히지도 저리 치울 수도 없이 그저 상처를 쥔 채 살아나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구성하며. 시끄럽게 치는 파도에 다 씻어 나갔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처는 잊히지 않는다. 한번 생각하면 생각을 멈출 수 없이 빠져버릴 만큼.
삶은 이어진다. 이쿠오의 얼굴도 모르는 아들이 그가 좋아했던 초록 자전거를 사고 싶은 것처럼 이어진다. 삶은 다가오고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몇몇의 이음은 상처들 일지도 모른다. 태풍이 거칠게 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고. 그리고 당연히, 삶은 다시 이어진다고. 어두움에 잠식되어 한치 앞을 볼 수 없도록 상처받아도 빛은 작은 틈을 파고들어 당신에게 찾아간다. 그리곤 다른 날이, 새로운 계절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 좋은 계절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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