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
[레전드 오브 타잔]. 개봉 당시 [사냥], [정글북] 등과 경쟁하며 좋지 않은 평을 들어왔다. 평점은 높은 편이지만 기대는 높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마고 로비는 빛났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거대한 스케일이나 원작을 통해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괜찮았다. 다만 식민지 정책에 대해 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확연한 '정의'의 편이 되진 못 했다. 스케일이나 스토리를 통해 더 깊게 이끌어 낼 수 있었지 않나 하고 물어 보고 싶다. 야생성을 이야기하며 무소를 타고 적을 무찌르는 타잔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그저 '전설'로서의 타잔이었다면 모르겠다. 그러려니 할 수 있었을 테다. 허구가 가득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타잔은 '레전드'적인 인물이어야만 한다. 남다른 출생 배경과 성장과정에서 그가 가진 특이점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이것은 그의 무기이자 그를 옭아매는 과거이기도 하다. 그를 남다르게 만드는 능력들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고민하고 따라가는 흔적이 필요해 보인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타잔은 '정글의 법칙'이 익숙한 영국 백작일 뿐이다. '정글의 신사'가 되려는 것인가. 교감의 과정에서 동물의 소리를 낸다거나 행동을 따라 하는 여러 과정들을 통해야 한다. 타잔의 손길 한 번으로 '야생성'은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현실적인 조건 위에 그의 특이성이 펼쳐질 때 타잔은 비로소 '레전드'가 된다. 범인이 이해하기조차 힘든 '전설적인 인물' 말이다.
얕은 교감의 시간과 증거들이 기저에 깔리니 이야기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급격스러운 전환들이 이어진다. 약한 증거에서 강력한 주장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원작이 있었기에 튼튼했지만, 긴밀하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타잔'이기 때문에 정글의 어떤 생물들도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다른 '타잔이기 때문에'의 장면들은 총을 맞고 다시 뛰어가는 장면이나 몇 '개미머리' 씩이나 꿰맨 상처로 격하게 뛰어다니는데 타잔의 얼굴엔 전투의지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타잔이 1대 1로 싸우거나 지는 경우는 망거니 고릴라와의 전투뿐이다. 타잔은 내내 강력함을 자랑하다가 고릴라와의 생물학적인 힘차이에 굴복하고 만다.
'타잔이기 때문에'보다 '타잔이라면'이 고민되었어야 한다. 그중엔 주변 인물들과의 영향도 고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윌리엄스의 재미, 제인의 강한 면모 등은 단편적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그중에서도 제인의 역할 비중이 아쉽다. 제인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은 한 번의 멋진 추격전 후 다시 숙녀 제인으로 돌아가버린다. 타잔 앞에만 서면 여성스러워지는 것은 그녀의 운명인가. 윌리엄스도 단순히 유머용 캐릭터로 소모된다. 당돌하면서 방대한 지식으로 타잔에게 도움이 되는 그다. 사격 실력도 좋은 그가 타잔이 밀림에 적응하고 교감하는 것에 감화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그런 타잔의 특이점을 포용하고 나아가 고민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저 웃긴 열쇠고리가 더 주목받은 느낌이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남은 레전드라면 조각 같은 타잔의 몸매 아닐까. 우람한 근육질의 남성이 흑인 부족들이나 나쁜 벨기에 놈들을 때려잡는 영화를 위해 타잔을 만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의 몸매와 제인의 아름다움을 부각하여 사랑이 가득한 타잔으로 만드는 것은 아쉽다. 클래식한 캐릭터인 타잔이 아니라도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문제는 '타잔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뻔하고 재미없는 관점들로 엮어냈어야 하는가?'이다.
'타잔'을 보는 관점을 바꿨으면 하는 이야기다. 타잔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미국 백인 남성적이다. 제인의 역할은 자신의 몸을 챙겨서 타잔에게 돌아오는 것이고 타잔의 역할은 상처까지 무시하며 무모하게 제인을 위해 돌진하는 남성이어야 하나. 이 이야기가 타잔의 레전드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랑의 구원자로 남으면 안 된다. 흑인 노예들이 힘없이 당하는 모습만 보여줘서는 안된다. 그저 현대적인 방식으로 타잔이라는 클래식한 캐릭터를 구현해 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무너진 디테일과 그로 인해 생겨난 불친절함에 아쉬움 가득히 영화를 보았다. 2016년의 타잔은 깊이 멋져야 했다. 캐릭터가 쌓아온 시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