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널>
[터널]은 2016년 8월 10일에 개봉한 재난 영화이다.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의 연출작이다. 하정우의 출연으로 기대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혹자는 세월호와 비슷한 상황의 재난이라는 설정을 통해 정치적인 영화라고 하지만 터널에서 묻는 질문은 정치적이라기보단 윤리적이고 개인적이다. 원작 소설은 2013년 발행되었다. 선입견을 멀리하고 재난 영화로써 보고 평가하길 바란다. 평가나 판단은 소비한 개인의 몫이다. 따라서 누군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선입견으로 생각에 못을 박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터널]은 평화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대형 재난이 폭발하는 흔한 재난 영화와는 다르다. 이른 시간부터 진행된 재난은 그를 어떻게 구조해 내는가에 대한 갈등으로 넘어간다. 붕괴된 터널 아래 깔린 남자는 그의 눈앞에 자욱한 먼지들 만큼이나 막막한 상황에 직면한다. 2차 붕괴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리고 진행되는 구조의 모습들은 작위적이라 믿고 싶지만 현실적이다. 사건을 다루는 언론과 고위 관리층의 태도, 허탈하게 무너지는 기술자들은 터널 안의 모습만큼이나 갑갑하게 만든다.
무너진 터널의 무게만큼이나 짓누르는 답답함 속에 홀로 살아있는 하정우의 능청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무겁고 진중하기만 할 재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오히려 하정우의 역할이다. 영화에서 '하정우스러운' 연기는 실소가 흘러나오게끔 한다. 충격이 올 때마다 놀란 토끼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모습과 눈치 보면서 아닌 척하는 모습들은 하정우만의 매력이다. 그가 더한 활기는 영화 전체에 무게감을 적당히 조절하고 다음을 위해 긴장감을 푸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의 유머는 관객이 가진 막연한 희망과 만나 묘한 조화를 이룬다.
뻔하디 뻔한 일상 속에 닥쳐온 재난,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이정수 씨의 상황. 소방 대원들조차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대형 재난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들도 당연할듯한 일들만 벌어진다. 믿지 못할 상황이지만 현실로 일어날 수도 있는 재난. 지구 멸망이나 대형 쓰나미 같은 스케일로 압도하는 재난이 아니라 일상과 현실에서 어쩌면 일어 날 수도 있는 재난이라는 점에서 [터널]은 더욱 갑갑하게 다가온다.
터널의 밖에서도, 터널의 안에서도 상황은 갑갑하게 진행된다. [터널]의 갑갑함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여러 생각이 들게끔 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덕분에 몰입도를 괜찮게 끌어올린다. 유머가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부담스럽지 않은 와중에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이 상황에 의해 은근히 던져진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돈을 몇십, 몇백 억씩 써가면서 살려야 하냐는 투의 말들은 안타깝게도 마음에 날아와 꽂힌다.
재난의 와중에서 피식피식 피어나는 웃음을 주는 것은 정수의 솔직한 반응과 웃픈 상황들이다. 서서히 죽어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정수는 밝은 모습을 유지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나눠주며 눈치를 보고, 같이 먹으려 남겨둔 케이크를 먹어버린 개에게 진심을 담아 소리치다 다른 생존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꿈을 꿨다고 대답하는 그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생존자에게 자신의 물을 나눠주고 케이크도 같이 먹으려 했다는 것은 그가 딱히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에게도 막연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두 번만에 처참히 무너진다. 다른 생존자의 죽음과 땅굴을 이상한 곳에 팠다는 구조 대장의 전화는 그에게서 희망을 앗아간다. 짓누르던 돌들이 떨어져 나가 기지개를 펴며 살아나가리라 희망을 가지던 그에게 자신도 죽고 말리라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약간의 갑갑함을 해소하고 나니 더욱 강력한 무게의 재난이 떨어지는 패턴인데 '부실 공사', '설계도마저도, 맞는 것이라 생각했던 기본적인 것마저도 거짓인 상황'은 패턴의 무게에 신빙성을 싣는다. 정수가 겪는 호흡곤란 증세는 구조 대장의 걱정과 이어지며 가족에 의한 극복으로 이어진다.
결국 정수가 절망의 맨 아래에 있을 때 그를 잡아준 것은 침착하고 진심 어린 대처를 하는 구조 대장이 아니라 그의 가족 세현이었다. 그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딸을 위한 케이크였기도 하다. 그리고 정수가 구조되고 나서 굳게 잡은 아내의 손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 말, "꺼져 개xx들아."처럼 대조된다. "전방에 터널입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와 함께 들어간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은 세현의 차이다. 그에게 가장 큰 힘과 희망은 가족인 것이다.
그다음으로 그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구조 대장(오달수 분)이다. 정수의 생존에 관해 끝까지 희망과 책임을 놓지 않았아 그를 살려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해보지도 않은 것을 권하는 것은 좀 그러니 자신이 오줌까지도 먹는 사람이다. 가장 작위적이면서도 현실에 필요한 인물인데 영화에서 제 역할을 다 해낸다. 그리고 구조 대장의 생각과 반대로 생각하는 다른 집단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터널 밖에서의 답답함을 담당하는 그 집단 말이다.
제설차를 보내주지 않는 직원이나 제2터널 건설 진행 허가서를 내미는 남자나 정부 고위 관리들도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터널 안의 남자는 죽었다. 주위의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던 사람마저 사고로 죽었으니까. '터널 안의 남자는 죽었다 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판단이 그들에게 들었을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닌 것에 쉽게 눈 감아 버리는 사회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구형 전화기를 사용하고 신기술인 드론을 이용하여 구조 현장을 살펴보려는 시도는 철광석이라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얼버무려져진다.(개인적으로 이유는 고압 전류에 의한 전파방해가 아닌가 한다.) 그 와중에 드론을 찍는다고 서있던 소방관들을 앉으라는 기자들까지. 그들이 이정수를 대하는 방식은 화젯거리 거나 가십에 불과하다. 그들은 구조대장의 말이, "저기 들어가 있는 건 사람입니다. 자꾸 까먹으시는 것 같아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닥쳐온 재난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가. 희망을 가지고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참고 참으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안됐다"하는 짧은 안타까움만 던지고 어쩌면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그 재난이 누구에게나 덮칠 수 있음을 간과하고 말이다. "그 사람이 운이 없는 것뿐이죠."라고 말하는 인터뷰 영상을 보며 한탄의 숨을 뱉었지만 이런 나조차 힘들게 살아가려 노력하던 이를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게 대했을 수도 있다. 터널 건설자들의 부실공사 또한 나의 일이고 내가 다닐 터널이라고 생각했다면,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 아닐까. 이런 관심이 '인간적인 나의 삶'을 위해서 필요하지 않을까. [터널]에서 씁쓸한 사회의 이면을 보며 쓴웃음을 삼키었다. 어딘가 불편해서 마음껏 웃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