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인>
[연인]은 1992년 개봉한 장 자크 아노의 연출 영화이다. 콩쿠르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마르그리뜨 뒤라스는 60대가 끝나가던 1984년 소설 [연인]을 집필했고 같은 해에 콩쿠르 상을 수상한다. [연인]은 1920~30년대 식민시대의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독특하고 함축적인 문체로 유명하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거나 혼란스러운 기술 방식 등으로도. 영화 [연인]은 그러한 문체를 많이 닮아있다. 급하지 않은 전개와 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려 길게 찍어내는 영상은 신기하게도 소설과 대조되며 살짝 비틀린 '반복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8월 12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연인] 시사회에 다녀왔다.
20년이 넘은 영화를 다시 개봉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다. '시네북토크'에 참여한 공지영 작가는 20년 전 개봉 때에도 관람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인 2016년에 다시 영화를 보니 이전의 관람했던 기억이 나는 곳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처럼 재개봉은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를, '기록물'으로써 시대의 반영을,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에 보는 것이다. 그리고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배경과 현실을 잘 재현해낸 작품은 생각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시대의 생각이 드러난다." 또한 [연인]은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소설을 봐도, 소설을 보고 영화를 봐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신기한 작품"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
[연인]은 예술과 외설의 논쟁 사이에 있다. 영화의 상당 장면을 성행위에 할애한다. 초중반의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은 대부분 성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몇몇 장면은 포르노에 가깝기도 하다. [연인]의 맥락 안에서 성행위는 중요한 '사건'이다. [연인[에서 성행위는 무조건적으로, 무분별한 욕망 추구에 의하지 않는다. 인물의 고민과 고뇌가 담긴 맥락에서의 사건이다. 다른 의미에서 다소 남성 중심적인 연출이나 장면이 사용된 점도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연인]이라는 작품이 가진 시대성에 의존한다. 1992년에는 남녀가 평등한 포르노그래피란 없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논쟁은 어떤 관점에 따라 어떻게 재단하느냐의 차이다. 그저 '차이'일 뿐이다. 물론 과한 외설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연인]의 성행위는 외설적이지만은 않다. 인물들의 입장과 고민을 표현해내는 중요한 장치이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해결은 간단하다. 성행위 장면이 불편하다면 관람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연인] 씨네북토크를 진행한 곽명동 기자에 따르면 장 자크 아노 감독은 "문화의 충돌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인]은 프랑스 감독이 연출한 '영어 영화'이며 사이공이라는 1920년대 식민시대의 호찌민에서 촬영되었고 영국인, 중국인 배우가 나온다. 그리고 [연인]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겐 이름이 없고 소녀, 그녀 혹은 나로 불리는 여성과 중국인, 중국 남자, 그로 불리는 남성이 등장한다. 식민시대 지배 계층에 있었던 프랑스인 어린 여성과 피지배 계층이지만 지배 계층에 가까운 중국인에 서른을 넘긴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이공 사람들은 언제나 일을 하고 있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일을 멈추지 않는 그들은 그대로 시대적 배경이 된다. 문화의 충돌들이 만연하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간곡함을 부른다.
'세상을 지루해하면서도 그에 반항할 것 같은 눈빛'
문화 간의 부닥침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선다. 지배 계층의 하위 경계에 있는 사람과 피지배 계층의 상위 경계에 있는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한다. 사랑은 필연적으로 계층 간의 간극을 만나 갈등을 빚는다. 그들의 사랑은 창문 너머의 키스 같다. 닿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어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불확실함은 닿지 못하는 것과 같이 위태로움을 부추긴다. 마치 배의 난간에 서서 한쪽 다리를 올린 그녀의 모습처럼.
인물들의 행동만큼이나 배경 또한 잘 묘사되어 아름답다. 사이공(현 호찌민)과 메콩 강을 건너며 잡히는 그림은 꾀나 광활하다. 아시아인들 사이에 섞인 백인 또한 시대의 배경에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린다. 이런 배경 묘사는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현실을 잘 재현해내는 것이 그 시대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 [연인]이 독특한 문체로 그려낸 정물화라면 영화 [연인]은 배경과 함께 잘 찍은 풍경 사진 같다. 20년이나 지난 사진은 조금 빛이 바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강렬한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