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
에이브람스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는 스타트렉의 두 번째 작품,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2013년 개봉했다. 수많은 '트레키'들의 찬사를 받았던 영화인 만큼 [스타트렉 비욘드]가 개봉하기 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케일의 SF 영화에서 스케일만으로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찾기가 참 힘들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우주에서 광자포를 쏴대며 하는 전쟁만이 SF 영화의 끝이라면 수많은 팬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탄탄한 내러티브가 있고 그것을 SF라는 영화의 한 장르로 녹여낸 영화다.
할리우드의 소설 원작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스토리는 흥행과 작품성에 필수불가결이다. 최근 그래픽 노블, 마블과 DC 같은 코믹스에서 만들어내는 영화들 또한 현재까지 유지되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에 있다고 본다. 그만큼 내러티브의 힘은 대단하다. 제아무리 시각적, 청각적으로 화려한 영화라 할지라도 내러티브가 없이 늘어만 놓는다면 오래 기억되기 힘들다. 번쩍임처럼 금방 잊히고 만다. 공감할 수도 없고, 감동을 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공감할 수 있고 감동하게끔 하는 영화는 저만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영화적 기법으로 잘 표현해 놓은 것이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기본적으로 원칙과 동료애, 폭력과 힘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것과 정당한 복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려 한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제임스 커크의 성장기를 통해서.
스팍의 목숨이 위태로운 임무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임무와 위기를 대하는 커크의 판단들을 보여준다. 임무 수행 중 위기에 처한 스팍을 구하기 위해 최고 명령 '타 행성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를 깨는 커크다. 그는 동료들의 목숨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오직 목표를 이루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깨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스팍은 자신의 목숨과 원칙 중 원칙을 거론하며 자신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죽음을 맞는 듯 용암 구덩이에서 두 팔을 벌린 채 기다리는 스팍의 모습은 그의 이성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살아 돌아오자마자 "넌 최고 명령을 어겼어."라고 하는 그다. 커크와의 대조가 명확하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커크를 불러서 "규칙은 남에게만 필요하나?"라고 묻는 파이크의 질문은 커크가 침묵하게 한다. 파이크는 커크의 함장직이 박탈되었고 "넌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사관학교로 돌아가라고 한다. 파이크는 커크의 규칙을 마음대로 어기는, 멋대로 구는 점을 지적한다. 커크에겐 원칙을 지키는 책임감이 없다. 감정에 휘둘리는 커크가 이때까지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룬 결과들이 우연히 좋은 결과를 낸 것이라 말한다. 이런 파이크의 말들은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하게끔 한다.
'나쁜 상황에 직면해서 커크는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는 판단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원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은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가?
질문은 커크가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암시한다. 첫 번째 질문의 상황은 데이스트롬 회의실로 이어진다. 직감과 판단력을 통해 습격 직전 상대의 작전을 파악하고 상황을 타개하는 커크다. 커크는 상황을 종료시키지만 그의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았던 파이크는 사망한다. 파이크의 죽음은 커크의 판단만으로는 완벽히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없음을 넌지시 보여준다. 또한 커크에게 복수의 의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이후 마커스 제독을 만나 존 해리슨(칸)의 추격 임무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부탁한다.
칸을 잡으러 가는 출정 과정에서도 커크의 동료들은 그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원칙에 어긋남을 말해준다. 스팍은 원칙에 대한 조언을 본즈는 신체검사, 스코티는 의문의 무기를 선적하지 않으려 하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스코티는 승인 거부 아니면 관둔다는 입장을 내건다. 그런 스코티에게 관두라고 하는 커크다. 하지만 출정하며 커크는 미사일을 쏘라던 마커스의 명령과 다르게 원칙에 따라 존 해리슨을 잡아서 송치하겠다는 명령을 전달한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며 커크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힘, 폭력을 상징하는 존 해리슨(칸)은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강한 인간이다. 그는 런던과 데이스트롬 등에서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이자 마커스가 소유하려 했던 강력한 힘 그 자체다. 그런 칸은 위기에 처한 커크의 일행을 살려준다. 폭력성에 도움을 받는 것이다. 또한 칸은 미사일이라는 자신의 동료라는 약점에서 바로 항복을 선언한다. 상대가 알지 못하는 약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먹질하는 커크에게 칸은 "함장" 이라 부른다. 칸과 커크의 분노와 동기는 닮아있다. 희생당한 동료에 대한 복수. 그래서인지 닮은 두 인물은 비슷한 자세로 마치 거울을 보듯 이야기한다. 커크에게 양심이 있어 보인다는 칸의 말은 자신의 분노와 비슷한 것을 느끼는 커크에 대한 동감이 아닐까.
칸을 만나면서 커크는 새로운 비밀들을 듣게 되고 영화는 더 큰 갈등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마커스와의 갈등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원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은 어떠한 결과를 야기하는가'에 상응하는 상황이다. 커크는 칸에게 스타플릿의 정점에 있는 제독인 마커스가 전쟁과 힘을 위해 칸과 그의 동료들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거대한 함선을 타고 나타난 마커스는 칸을 자신이 직접 처리하겠다고 한다. 이는 마커스가 행한 실수, 원칙을 모두 어기고 힘에 집착하여 만들어낸 결과를 지우기 위해 칸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원칙, 제독으로서의 책임도 무시한 채 힘과 전쟁을 생각하던 마커스이다. 원칙을 모두 무시했다는 점에서 커크의 성격이 묘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마커스는 커크를 '아들(son)'이라 부른다.
그러나 마커스는 커크처럼 동료를 소중히 여기지도 그들에게 사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커스는 스스로를 믿고 독자적인 행동을 통해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반대로 책임지지 못한 동료들에게 사과하는 캡틴인 커크는 필연적 우연들, 캐롤 마커스의 존재나 스코티가 함선에 탄 일이 겹치며 기회를 얻어낸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필연적으로 폭력, 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커크는 칸과 마커스의 함선으로 떠난다. 원칙을 지키는 스팍을 함장으로 임명하는 믿음을 보여주고서.
마커스를 제압한 후 칸을 잡으려 한 커크의 시도는 실패하고 반대로 칸이 커크를 제압한다. 칸은 커크를 인질 삼아 자신의 동료들과 교환 후 엔터프라이즈를 무차별 폭격한다. 마커스의 과오는 거대한 힘이 되어 커크와 동료들을 죽이려 한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버텨내고 위기를 극복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동력을 잃고 추락한다. 마치 무기력하게 무너지던 커크처럼.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커크는 동력을 돌려놓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방사능이 가득한 엔진실 내부 깊숙이 들어간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자신이 지켜야 할 엔터프라이즈호와 동료들을 위해서. 마치 스팍이 자신의 목숨을 함장의 자리에 묶었듯 말이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를 구한 뒤 스팍과의 대화에서 '논리적인 선택'인 원칙과 '친구라서 그런' 동료애를 말하며 커크는 숨을 거둔다. 희생과 원칙, 책임은 커크가 마커스와 다른, '진정한 캡틴'이 됨을 의미한다.
이후 조정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함선은 스타플릿을 덮친다. 칸이라는 원칙을 어긴 힘에 대한 과욕이 결국 과욕을 부린 자, 마커스의 본거지에 덮치는 것이다. 마커스의 잘못된 선택은 그와 관련된 동료들에게 거대한 폭력으로 돌아온다. 폭력의 흔적인 칸은 살아남아 도시를 뛰어다닌다. '함장' 스팍은 칸을 잡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칸의 피는 커크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다른 폭력에 휘둘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할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살의나 권력욕이 느껴지지 않아?"라고 묻는 본즈의 질문은 짓궂다. 그리고 칸은 죽지 않고 동결될 뿐이다. 동결되는 장면의 위엔 "적대적인 세력은 언제나 존재합니다."라는 말이 얹힌다.
원칙을 어기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동료와의 신뢰를 저버리고 자신의 자리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공동체를 희생하는 마커스는 필연적으로 칸과 같은 인물을 바란다. 그러나 마커스의 비틀린 방법은 분노와 폭력을 이끌어낼 뿐이다. 커크는 동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원칙을 지킴으로써 함장으로서의 책임도 수행한다. 여러 사건들을 통해 커크는 한 걸음 더 멋진 함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커크의 성장 과정은 멋진 액션 씬과 시각적 효과들로 채워져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다 보고 난 이후 우리는 이 생각을 떠올린다면 제작진의 강력한 내러티브에 '워프'당한 것이다. '멋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