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일본의 거의 모든 도시에는 성이 있다고 한다. 성의 모습은 도시의 개성만큼이나 제각각이라고 한다. 성을 지은 이유는 과거 에도시대, 전국시대를 두루 거치며 지방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권력과 가문의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성은 일반적인 성의 외형에서 벗어나 있다. 개성이 가득하고 이곳저곳에 방들이 붙어있다. 증기를 뿜어대며 앞으로 걸어가는 하울의 성은 괴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같은 판타지스러운 성의 모습인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온 라퓨타와도 완전히 다르다. 그렇게 특이한 하울의 성은 실제 성과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울의 성은 하울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의 성은 그가 지켜야 할 마음이다. 후에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 소피와 마루쿨, 마녀가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싸우다 지쳐 돌아와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의 성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군인들이 주위를 맴돌면 이내 사라져 버리곤 한다. 이는 자신을 숨기고 싶은 그의 마음을 투영한다. 또한 여러 사람의 집으로 연결되는 입구는 내면이 가진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의 모습은 자주 바뀐다.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바뀌듯이. '이사'하는 장면에서 성의 변화는 하울의 심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의 내면에 여러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중에서도 소피의 방이 생긴다는 것은 그의 마음 안에 소피가 들어왔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는 장면이다.
성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악마 카루시퍼이다. 유성에서 떨어진 정령(악마)인 카루시퍼는 하울과의 계약을 통해 성을 지키고 있다. 내면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유성에서 온 태생을 볼 때 카루시퍼가 의미하는 것은 꿈이라고 생각한다. 하울이 어릴 적부터 가져온 꿈 말이다. 또한 카루시퍼는 화약 불을 싫어하는 불이다. 같은 불이지만 파괴의 상징인 화약 불과 상반되는 카루시퍼는 불이 가진 긍정성을 다룬다. 동력, 힘, 건설과 같은 일들을 카루시퍼는 해낸다. 무너진 성을 다시 들어 올리는 것까지도 해낸다. 꿈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카루시퍼가 상징하는 꿈이란 무엇인가? 하울의 꿈은 무엇일까.
하울의 꿈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매번 나서서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전쟁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전쟁이란 그 자체로 파괴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소재이다. 필자는 이런 전쟁의 모습을 세상을 지배하는 생각, 지식을 비추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주도하는 역할은 궁중 마법사 설리반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힘, 마법을 전쟁을 위해 사용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제자들은 똑같은 모습이다. 이것은 자신의 지식(마법)을 활용하는 설리반이 권력(국왕)과 함께 만들어내는 복제된 지식들의 표상이다. 일련의 교육 과정을 통해 찍어내듯 제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은 전쟁에서 괴물이 되어 하울과 싸운다. 하울은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방법을 까먹은" 괴물이 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한 때 같은 동료에서 괴물이 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 괴물들은 설리반에 의해 괴물이 된 제자들이다.
설리반은 궁중에서 일하는 마법사이다. 권력과 함께하는 지식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일련화 된 모습이다. 그런 일련화 된 마법(지식)은 전쟁에서 활용된다. 국왕이 이웃나라를 점령하는 데 사용된다.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국왕의 모습처럼, 전쟁은 세상에 가해지는 지배계층의 타인에 대한 억압을 비춘다. 그래서 전쟁이 세상을 지배하는 생각과 지식이라 생각한다. 설리반의 제자인 하울은 이런 전쟁에서 자신의 마법(지식)으로 전쟁을 멈추고 싶은 인물이다. 하울이란 이름은 'howl:울부짖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일련화 된 지식과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울부짖음을 내뱉는 새로운 계층을 대표한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마법사(지식인)이다.
그렇다면 하울의 꿈은 무엇일까. 하울의 꿈은 카루시퍼와 계약을 하던 과거 그가 살았던 집과 같다. 하울은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다양한 색의 꽃이 만발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을 꿈꾼다. 세상을 억압하는 지배,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평화롭고도 건강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하울은 그런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다. 그래서 하울은 전쟁에 나선다. 그리고 일련화 된 설리반의 제자들과 싸운다. 그러면서 하울은 점점 바뀌어간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과 싸우면서 같이 물들어가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하울처럼 개성이 있고 자기만의 꿈이 있는 지식인이 퇴폐하고 지배적인 세상과 싸우면서 시나브로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울은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장난감 같은 부적이 가득한 자신의 성 가장 깊숙한 자신의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다. 점점 괴물이 되어갈 때는 자신의 방에 있는 굴 같은 곳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 하울을 치료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소피의 역할이다. 소피가 하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하울의 변형을 막고 그가 마법을 바른 곳, 가령 폭탄이 떨어지는 걸 막거나 군함의 항로를 막는 곳에 쓸 수 있게 한다. 소피는 하울이 마음을 다시 잡게하는 사랑의 힘을 가진 연인이다.
하울과 소피의 성격은 반대다. 외모를 보는 관점에서 생각의 차이가 드러난다. 하울은 머리의 색에 집착할 만큼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라고 하는 그는 자신의 모습에 강한 자신감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하울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성(내면)의 청소를 게을리할 만큼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반대로 소피는 자신의 외면에 자신감이 부족하다. 남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거울을 보고 모자를 쓰고 멋을 내보는 사람이다.
소피가 걸린 저주, 늙게 되는 저주는 자신감이 결여되고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늙은 모습을 겉으로 보여준다. 설리반과 대면한 장면, 하울이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집을 보여주던 장면에서 소피의 모습은 소피의 행동에 따라 바뀐다. 그녀가 자신감을 가득 담아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젊은 모습으로 변하고 자신의 외모에 불확신을 가지는 순간 그녀의 외모도 늙어버린다. 저주는 그녀의 확신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피는 타인 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마음을 중시하는 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자기중심적인 하울과 타인 중심적인 소피는 서로의 모습을 닮아감으로써 교감해나간다. 하울의 성을 청소하는 소피의 모습은 소피가 상처받고 뒤틀린 하울의 내면을 아끼고 돌보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하울은 자기중심적이란 상징, 외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머리가 더 이상 금발이 아니어도 우울해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소피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하울은 자신을 위해주는 소피를 아끼고 보호해준다. 자기만을 생각하던 하울에게 가족이 생기는 것, 중요한 타인이 생기는 것이다. 소피는 상처받는 하울을 위해 자신의 머리를 바칠 만큼 하울을 위한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해낸다. 이런 두 인물의 교감은 미성숙한 자아가 서로 다른 이를 만나 배우고 스스로를 바꿔가는 성숙의 과정이다.
나에 대한 믿음과 상대에 대한 사랑이 적절히 배분된 하울과 소피의 관계는 하울의 꿈을 돌려놓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소피가 하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하울에게 카루시퍼를 넣자 하울은 심장이 생기고 카루시퍼는 자유를 얻는다. 자신의 심장(꿈, 진심)을 성(내면)에 숨겨두고 있었던 하울은 다시 심장을 되찾는 것이다. 이는 전쟁이 두려워, 세상이 자신에게 퍼붓는 화약이 두려워 숨겨두었던 자신의 심장을 다시 되돌려 놓는 힘은 소피의 사랑으로부터 옴을 의미한다. 진심 어린 사랑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그의 꿈을 다시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의미다. 굳게 경직되어 괴물처럼 변한, 죽음에 이른 하울을 살린 것은 그녀의 사랑이었다.
전쟁은 종식된다. 그리고 하울과 카루시퍼의 성은 하늘을 난다. 하늘을 나는 것은 원하던 바람이 이루어짐, 이상향에 닿음을 의미한다. 청명한 하늘처럼 그들은 행복한 전후 세대가 된다.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일련화 된 지식이 무너지고 사랑, 진심의 힘을 가진, 개성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울과 소피가 꿈꾸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끝이 난다.
필자가 생각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습은 이러하다. 이처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것이 비추는 현실 세계의 모습들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세상의 모습을 정밀하고 아름답게 담아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진한 여운과 감동을 안겨준다. 또한 영화를 보고 또다시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추억처럼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게끔 해준다. 볼 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해주는 영화다. 그리고 해석을 해나가며 필자의 생각이 매번 다른 만큼 영화를 본 만인의 생각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궁금하다. 당신에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