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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정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골방우주나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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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게 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때문이 아니었다. 필자가 처음 매료된 것은 포스터였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이라는 큰 상을 받은 이 영화는 포스터에 담긴 빛과 부자의 모습이 전하는 말이 많다. 한눈에 들어오면서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짧막한 감상평 같은 제목은 마침표를 찍은듯 동그랗게 찍힌 모습이다. 포스터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간직한 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길 바란다.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진 마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보는 사람마다 다른 질문을 준다. 아버지가 된 사람에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직 아버지가 되지 않은 사람에겐 아버지라는 관계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는 특별하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또다른 자신의 일부이자 타인이다. 나와 비슷한, 나로부터 출발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초반부, 주인공 료타가 강조하는 것처럼 피는 속일 수 없는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피로 연결된, 서로가 많이 닮은 가족이다.

%BE%C6%B9%F6%C1%F6%B0%A1%BE%C6%B4%D1%B4%AB%BA%FB.jpg?type=w1 혼자 다먹진 않겠지 하는 눈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피의 관계,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의 필연성은 자주 강조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 필연성 말이다. '피'라는 확실한 매개체로 아버지와 아들은 이어진다. 서로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 몰라도 혈연이라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리고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전자라는 가장 작은 구성 단위에서도 단 1%의 오차만을 허용하는 유사함이다. 이런 깊은 관계로 인해 그들은 세상의 어떠한 타인보다도 서로와 닮아간다. [환상의 빛]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던 초록색 자전거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들이 자연스레 초록색 자전거에 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 관계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내 짜증을 내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 일치율 99%가 무색할만큼 부자는 자주 틀어진다. 아들은 아버지의 못난 점들을 싫어한다. 불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가 아버지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사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기 전 이렇게 생각했다. 흔한 아버지의 이야기겠거니.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생각하는 피의 관계이겠거니 했다. 그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방식으로, 그만의 색들로 채우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나오는 부자의 모습은 흔하지 않았다. 미련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는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의 초반부터 '피의 관계'는 무너진다. 어느날 아들을 놓은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그들의 관계를 분해한다. 료타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케이타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듣게된다. DNA검사는 누군가가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 만큼이나 확실하게 케이타가 료타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피의 관계는 완전히 사라진다.

%BF%EC%B8%AE%BE%C6%B5%E9%C0%CC%BE%C6%B4%CF%B4%D9.jpg?type=w1 짧막하고 단호한 검사결과

아들과 아버지라는 관계를 지탱하던 큰 축인 혈연관계가 사라지자 료타는 한없이 흔들린다. 검사 결과를 들은 료타가 케이타를 보는 눈빛을 보았는가. 한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모른척하면서도 감출 수 없는 의심을 드러내던 눈빛을. 그리고 케이타가 자신의 직계 자손이 아니란 확실한 증거를 손에 들자마자 케이타와 멀어지기 시작한다. 분명 문제가 되는 것은 케이타와의 관계인데 료타는 점점 케이타로 부터 멀어진다. 그를 만나는 시간은 더더욱 적어지고 고민을 나누는 상대는 변호사 친구가 되어버린다. 관계에 대한 문제임에도 그는 스스로 고립된다. "내가 해결 할게."라는 말을 아내에게도, 유다이에게도 하듯 자신이 이 '문제'를 끝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료타는 케이타로 부터 멀어진다. 한 때 자신을 닮아가던 아들이었던 아이는 완전히 타인이 되어버린다.
료타에게 케이타는 양육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케이타가 뭐든지 잘하길 원한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케이타가 따라가길 원한다. 그래서 케이타를 통제하고 료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길 원했다. 이는 료타가 류세이에게 하는 행동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나의 피를 이어받았으니까"라고 말하며 류세이를 바꿔놓으려는 료타다. 류세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바른 젓가락질을 가르친다. 료타는 아들이 양복을 입은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케이타와 류세이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케이타는 어설픈 피아노 발표회를, 류세이는 쾅쾅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료타는 양육을 하려 했지만 그의 양육은 성공하지 못했다.

%BC%AD%B7%CE%B4%D9%B8%A5_%BE%C6%B9%F6%C1%F6.jpg?type=w1 서로 다른 두 '아버지'

흔들리는 자신을 빡빡하게 가둬두던 료타의 벽에 틈을 내준건 유다이의 말이었다. "아버지란 것도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게 아니잖아."라는 말. 그리고 틈새에 들어온 빛은 케이타가 남기고 간 카메라에 든 사진들이었다. 잠든 자신의 모습을 찍은 케이타의 사진들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케이타의 관계에 대해서 무심했고 한번도 제대로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같이 길을 걸으며 케이타에게 말한 료타의 말처럼 '미션'은 끝나고 진정한 관계가 된다. 아버지가 바뀌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미션'이 아니다.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수행해야할 '미션'이나 '게임'이 아니라 "케이타가 보고 싶어서" 온 료타와 케이타의 진정한 관계이자 교감이다.
그렇게 료타는 아버지가 된다. 케이타라는 아이와 아버지라는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매미가 15년을 땅속에서 기다려 유충이 되어도 긴 시간이 아니다. 매미가 보름 남짓한 시간을 위해 15년을 기꺼이 땅속에 있듯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또한 기꺼이 수년, 수십년을 바쳐야할지도 모른다. 료타와 케이타가 보내온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또 다른 6년, 10년을 맞이하며 료타와 케이타는 더욱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갈 것이다. 이것은 료타가 진정으로 케이타를 보기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료타가 스스로의 편협함으로 갇혔던 상태, 고립의 상태로부터 나와 케이타에게 다가간 것이다. 아버지라는 관계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게 진득한 관계의 발전 과정과 료타의 성장은 '아버지'라는 이름에 다가가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C4%C9%C0%CC%C5%B8%BF%CD_%B7%E1%C5%B8.jpg?type=w1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지탱하던 혈연을 깨고나니 관계만이 남는다. 순전히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만 남는다. 그렇게 더욱 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료타에게 케이타는 어설픈 양육의 대상이었다가 완전한 타인에 가까웠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된다. 완전한 타인이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상상만으로도 어색한 경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다. 피의 관계에 종속되지 않은 순수히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영화에 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취한 방법과 유사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유지해온 속일 수 없는 피의 관계를 완전히 부순다. 그리고 관계의 내막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기존 생각을 부숨으로써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 너머를 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세계를 지탱하던 생각을 새로이 바꿈으로써 새로운 가족주의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료타가 혈연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순수한 교감을 통해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혈연을 맺지 않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함으로써 진정한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진한 의미를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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