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으로 백만 대군을 움직이다
지난주까지 빌런 열전의 3인 백제 예식진, 고구려 봉상왕, 신라 김품석을 만나보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전쟁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활약한 삼국시대 인물들을 만나볼까 합니다. 그 첫 번째 친구는 신라 3대 문장가 중 한 명이자, 붓 하나로 당나라 황제를 감동시킨 외교의 달인, 강수(强首)입니다.
첫인상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기,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는 큰코다칠 뻔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머리 뒤쪽에 뿔처럼 기이한 뼈가 튀어나와 있어서 모두가 신기하게 보던 아이. 하지만 그 튀어나온 머리통 안에는 신라의 운명을 바꿀 천재적인 지혜가 들어있었습니다.
강수는 본래 신라에 병합된 가야 출신이었습니다. 다만 일찍부터 신라로 이주하였기에 가야 항복 이전부터 신라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강수의 부모는 강수가 기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잘 양육하여 장래에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선비[國士]로 만듭시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부모의 지원 덕분에 강수 유교 서적을 통달하며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았죠.
그의 진가는 난세에 빛을 발했습니다. 당시 신라는 백제, 고구려와 치열하게 다투며 당나라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무열왕은 당나라에 보낼 외교 문서를 쓸 인재를 찾았고, 강수가 발탁되었습니다. 그가 쓴 문장은 화려하면서도 논리 정연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당나라 황제는 강수의 글을 읽고 감탄하여 신라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칼과 창이 빗발치는 전쟁터 뒤편에서, 그는 붓 한 자루로 수만 명의 지원군을 끌어오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문장(文章)의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수를 진정한 '친구'로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그의 인간적인 매력, 특히 '사랑'에 대한 태도 때문입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그는 대장장이의 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버지는 "미천한 자를 배우자로 삼는다면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느냐"며 극구 반대했습니다. 그때 강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조강지처불하당, 糟糠之妻, 不下堂)."
결국, 그는 대장장이의 딸과 평생을 함께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이나 체면보다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더 소중히 여겼던 로맨티시스트였던 것이죠. 훗날 삼국이 통일되고 강수는 큰 상을 받아서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강수의 아내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 훗날 신문왕이 강수의 장례를 치러주며 많은 재물을 하사했지만, 강수의 가족들은 그 재물을 모두 절에 봉양했다고 합니다.
강수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멋짐'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남다른 외모를 실력으로 승화시킨 의지, 강대국 황제의 마음을 움직인 지성, 그리고 신분의 벽을 넘어 한 여자를 끝까지 지켜낸 순애보까지. 겉모습은 조금 투박했을지 몰라도, 그 속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아름다웠던 강수. 겉치레에 지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