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왕릉 대신 바위굴을 택한 왕
역사책은 보통 영토를 넓힌 정복 군주나 화려한 업적을 남긴 왕들을 굵은 글씨로 강조해서 기록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소리 없이 세상을 적시는 봄비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왕이 있습니다. 오늘의 친구가 바로 그런 왕입니다. 고구려 제4대 왕인 민중왕입니다.
민중왕(본명 해색주)은 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전쟁의 신' 대무신왕의 아우입니다. 조카가 너무 어려 왕위에 오른 민중왕은 형과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쟁의 신이라는 이칭답게 대무신왕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며 고구려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은 고구려에 영광은 안겨주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잦은 전쟁과 노역으로 인한 부담을 준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구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민중왕은 칼을 내려놓고 백성들의 밥그릇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선 대사면을 실시해서 죄수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고대 시대에 대사면은 노동을 할 수 있는 인원을 늘린다는 점에서 왕의 배포를 보여주는 것이자 경제적 이득을 꾀한 정책이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서 신하들의 여론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민중왕 재위 3년에 고구려에는 큰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수해에 시달린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자 민중왕은 주저 없이 나라의 창고를 활짝 열었습니다. 굶주린 이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고 세금을 감면하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애썼습니다. 그는 권위적인 지배자가 아니라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공감의 군주였습니다.
그의 따뜻한 성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일화는 바로 그의 '유언'에 담겨 있습니다. 예전 고구려의 왕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왕릉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백성의 피와 땀을 요구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였죠. 어느 날 사냥을 나갔던 민중왕은 우연히 '민중원'이라는 곳에서 한 석굴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 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죽으면 거창하게 무덤을 만들지 말고, 이 석굴에 장사 지내라. 백성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그저 이 굴을 내 안식처로 삼게 하라."
왕으로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백성들의 노고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가 재위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그의 유언을 받들어 거대한 무덤을 만드는 대신 그를 석굴에 안치했습니다. 흙과 돌을 쌓아 올린 웅장한 왕릉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만큼은 그 어떤 왕릉보다 높고 거대했습니다.
역사는 그를 '민중왕(閔中原)'이라 기록했습니다. 그가 묻힌 장소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어쩐지 그 이름에서 백성을 뜻하는 '민중(民衆)'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화려한 금관보다 백성의 편안한 잠자리를 더 소중히 여겼던 왕.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단한 고구려 백성들에게 그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든든한 나무 그늘 같은 친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