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적과 손잡은 용기, 생존을 위한 악수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자존심을 굽혀야 할 순간을 마주합니다. 특히 내가 싫어했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나라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무게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접고 어제의 적에게 먼저 악수를 청한 왕이 있습니다. 오늘의 친구는 백제 제20대 왕, 국가적 위기 속에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외교 업적을 거둔 비유왕입니다.
비유왕은 외모가 훌륭하고 말솜씨가 유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말솜씨는 백제의 위기 앞에서 뛰어난 외교술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던 5세기 초반, 한반도의 정세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습니다. 북쪽에서는 '괴물' 같은 거인이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고구려의 장수왕이었습니다.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427년), 남쪽을 향해 칼끝을 겨누기 시작했습니다.
백제인들에게 장수왕의 남하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멸망의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비유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백제 혼자만의 힘으로는 저 거대한 고구려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냉정하게 파악했죠. 그렇다면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할까요?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동쪽의 신라였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백제와 결코 우호적인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에 신라는 고구려의 신하가 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남하해 온 고구려군은 백제와 백제의 동맹이었던 왜의 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이런 신라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백제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자, 내부 귀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유왕은 "살아남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433년, 그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사신을 보내 신라에 화친을 제의했습니다. 비유왕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당시 신라의 눌지 마립간 역시 고구려의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백제가 사신을 보내고 말과 흰 매를 계속 보내자 눌지 마립간 역시 금과 구슬을 보내서 화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 교과서에 굵은 글씨로 등장하는 나제동맹(羅濟同盟)의 시작입니다.
비유왕의 이 선택은 단순한 외교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얽매여 죽을 것인가, 아니면 과거를 덮고 함께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용기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동맹 덕분에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며 다시 한번 국력을 정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비록 화려한 전쟁 영웅은 아니었지만, 비유왕은 펜(외교)이 칼보다 강할 수 있음과 진정한 용기는 적을 베는 것이 아니라 적을 친구로 만드는 데 있음을 보여준 지혜로운 군주였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해결책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의 친구 비유왕을 보면서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적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가진 남자. 백제의 왕 비유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