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방아 소리 대신 거문고를 탄 낭만가
지난 연재까지는 삼국의 인물들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신라의 기록이 많다 보니 고구려와 백제의 인물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다루되, 국적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신라의 인물들이 좀 더 많이 다루어질 예정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시고 앞으로의 연재를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쿵덕, 쿵덕.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섣달그믐, 온 마을에 흥겨운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집집마다 새해를 맞이할 떡과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유독 서럽게 들리는 집이 딱 한 곳 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당장 저녁에 먹을 쌀 한 줌조차 없었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친구는 이 가족의 가장인 백결(百結) 선생입니다.
백결 선생은 신라 자비 마립간시대의 사람으로 5세기 후반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본래 영락(永樂)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비였으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백결'이라 불렸습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그의 눈빛만은 맑고 깊었으며 늘 거문고를 품에 안고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연주하곤 했습니다. 그는 세속의 명예나 부귀영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음악과 자연을 벗 삼아 청빈하게 살아가는 낙천적인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가장의 가난은 가족들에게는 아픔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떡방아 소리는 백결 선생의 아내에게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아내는 텅 빈 쌀독을 어루만지며 탄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찧는데, 우리만 없으니 무엇으로 해를 넘길까?” 아내의 눈물 섞인 푸념을 들은 백결 선생은 무능한 가장이라는 자책감, 아내를 향한 미안함이 밀려왔을 겁니다.
백결선생은 조용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거문고를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 “대체로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 그것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것이 가는 것을 좇을 수 없는데 당신은 어찌 근심하시오? 내가 당신을 위하여 절굿공이 소리를 내어서 위로하겠소.”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보면 조금은 무책임하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는 거문고 줄을 퉁기기 시작했습니다. 둥기둥 당기당. 놀랍게도 현 위에서 떡메가 떡을 치는 듯한 묵직하고도 흥겨운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쿵덕, 쿵덕." 절묘한 박자와 가락은 영락없는 방아 소리였으니, 이 곡은 훗날에 방아타령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가난을 비관하는 슬픈 곡조가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도 떡을 해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울고 있는 아내를 웃게 만들고 싶은 남편의 따뜻한 해학이 담긴 연주였습니다.
현실이 팍팍하여 웃음을 잃어버린 날, 마음속으로 백결 선생의 거문고 소리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유했던 그의 낭만이 당신을 토닥여줄지도 모릅니다. 너무 힘들고 바쁘지만 가끔은 없다는 것에 슬퍼하지 말고 잠시 쉬어갈 필요도 있다는 것을 백결 선생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친구, 백결 선생과 친해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