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 악성(樂聖) 우륵

열두 줄의 슬픈 맹세

by cm

한국 고유의 악기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거문고, 대금, 피리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름은 역시 '가야금'입니다. 오늘은 1,50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귓가에 가야금 소리를 전해준 악성(樂聖), 우륵가 친해져 보겠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열두 개의 명주실 위로 손가락이 춤을 춥니다. 때로는 폭포수처럼 격정적이고, 때로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그 소리에 듣는 이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선율 뒤에는 조국을 잃고 적국의 품에 안겨야 했던 한 예술가의 피눈물 나는 고뇌가 숨어 있습니다.


우륵은 대가야 가실왕의 총애를 받던 궁중 악사였습니다. 가실왕은 중국의 악기인 쟁(箏)을 본떠 새로운 악기를 만들게 하고,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 12개 지방의 특을 담은 12곡을 짓게 했습니다. 왕은 음악을 통해 흩어진 가야 사람들의 방언을 하나의 음악으로 모으고 싶어 했죠. 우륵은 밤낮으로 고민하며 가야의 산천과 사람들의 숨결을 열두 줄에 담고 12곡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 고유의 악기, '가야금'과 우륵 12곡의 탄생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가야의 국운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졌고,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전쟁의 불길이 치솟을 때, 우륵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조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할 것인가, 아니면 비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이 음악을 살려낼 것인가. 예술가 우륵의 선택은 후자였습니다. 그는 가야금 하나를 둘러메고 적국인 신라로 망명합니다.


신라의 진흥왕은 다행히 깨어있는 군주였습니다. 그는 우륵을 국원(지금의 충주)에 머물게 하고, 신라의 인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신라 내부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망한 나라의 음악(亡國之音)은 재수가 없다"라며 우륵의 음악을 배척하려 했죠. 그러자 진흥왕은 "가야왕이 잘못하여 스스로 멸망한 것이지, 음악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우륵을 두둔했습니다. 국 진흥왕은 가야금을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삼았습니다. 가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가야의 영혼은 신라의 음악이 되어 살아남은 것입니다.


신라로 귀화한 이후에 우륵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진흥왕은 계고, 법지, 만덕 3명에게 우륵의 곡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후 그의 제자들 가야의 12곡을 5곡으로 줄여서 편곡했습니다. 우륵 그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즐거우면서도 질탕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참으로 바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제자들의 음악이 이미 자신을 넘어섰음을 그리고 이제 가야금은 가야의 것을 넘어 신라의 것이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 섞여있는 것이죠.


우리가 지금도 가야금 산조를 들으며 가슴 저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망국의 벼랑 끝에서도 악기를 놓지 않았던 우륵의 고독한 용기 덕분입니다. 그는 나라를 잃은 패배자가 아니라 예술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승리자였습니다. 악성 우륵과 더 친해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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