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 고구려 유민 고을덕

by cm

삼국시대가 끝나면서 고구려, 백제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멸망했지만 거기서 살고 있던 사람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옛 고구려, 백제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서 유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유민들은 특히 당나라에서 많은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삼국의 유민들과 친해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거나 장렬히 산화한 영웅의 비가(悲歌)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 죽지 못해 적국의 땅으로 끌려가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오늘의 친구는 10여년 전 발견된 묘지명을 통해 1,300년 만에 그 기구한 삶이 드러난 고구려의 장수인 고을덕(高乙德)입니다.


고을덕은 고구려 최고의 귀족 가문인 동부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왕의 최측근에서 왕실 재정을 담당하는 '상사(垧事)'라는 특수직을 맡을 만큼 권력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상사는 고구려 왕실의 사적인 목장이나 재산을 관리하던 직책으로 추정되는데, 이 묘지명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역사 학계에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고구려의 관직이라고 합니다. 고을덕은 이런 중요한 관직을 대대로 맡은 집안의 자식이었으니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연개소문 일가가 권력을 독점하면서 왕과 가까웠던 그의 가문은 점차 밀려나게 됩니다.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661년, 그의 나이 44세 때였습니다. 당나라 대군이 요동을 침략했을 때, 그는 '귀단성(지금의 신성)'의 성주로서 군사를 이끌고 적과 맞섰습니다. 스스로 항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맹렬히 싸웠고 불행히도 전사하는 대신 생포되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끌려간 고을덕. 당 고종은 그의 죄를 묻지 않고 벼슬을 내렸습니다.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적국의 군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는 그에게 잔인한 임무를 맡깁니다. 바로 고구려 땅으로 돌아가 그곳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나라의 관리(동주 장사)가 되어 폐허가 된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한때 동료였던 고구려 부흥군을 진압하는 당나라 군대의 길잡이가 되거나, 행정 실무를 맡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묘지명에는 그가 "나라(당나라)에 충성을 다했다"고 적혀 있지만 칼을 겨누어야 했던 대상이 어제의 내 조국, 내 이웃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형벌이었을 것입니다.


고을덕은 고구려를 관리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이후 그는 당나라에서 승승장구하여 종3품 '관군대장군'이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오르기 때문입니다. 고을덕은 82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화려한 무덤에 묻혔습니다. 겉보기엔 성공한 이민자의 삶이었죠. 하지만 묘지명 행간에는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화려한 관직명 뒤에 숨겨진, 망국의 유민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침묵과 타협의 시간들 말입니다.


고을덕의 삶은 우리에게 생존의 무게를 묻습니다. 영웅처럼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되어 적국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삶. 어쩌면 그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의 전장에서 매일 홀로 싸웠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역사책에 한 줄도 나오지 않지만,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고을덕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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