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 백제 유민 진법자

by cm

지난 시간에는 고구려 유민, 고을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친구는 무너지는 조국 백제를 뒤로하고 당나라로 건너간 백제 유민입니다. 바로 당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낸 장수 진법자(陳法子)입니다.


진법자의 가문은 아주 오래전, 중국의 혼란을 피해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이었습니다. 그의 조상들은 낯선 웅진(공주)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백제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진정한 백제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백제의 국립대학인 '태학(太學)'의 총장(태학 정)을 지낼 만큼 학식 높은 가문이었습니다. 진법자 역시 "얼음처럼 맑고 거울처럼 투명하다"는 칭송을 들으며 자라났죠.


그는 붓을 든 행정가이면서 동시에 칼을 찬 지휘관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관직에 나가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기모군의 관리와 품달군의 군장(사령관)을 거치며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가 백제의 중앙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군(司軍)'이라는 직책에 올랐을 때,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의 말발굽이 사비성을 덮친 것입니다.


백제 멸망의 순간에 진법자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계백처럼 장렬히 죽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훗날을 도모할 것인가. 묘지명은 그가 "기회를 틈타 변화하였고(因機一變), 마음을 바꿔 귀순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의 수도 낙양으로 끌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비겁한 변절이었을까요? 아니면 가문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고뇌 찬 결단이었을까요?


백제의 유민으로 시작했기에 당나라에서 진법자의 삶은 녹록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백제에서 출세했었던 능력을 발휘하여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당나라의 장군이 되어 여러 관직을 거쳤고, 70세가 되어 "이제 그만 쉬고 싶다"며 은퇴를 청할 때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당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낙양의 집에서 76세의 일기로 눈을 감을 때, 그가 고향 웅진을 떠올렸을지 아니면 자신이 이룩한 낙양의 삶을 생각했을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진법자의 삶은 우리에게 '이주'와 '적응'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멸망하는 백제를 뒤로 하고 당나라로의 이주와 적응. 거대한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그는 결코 침몰하지 않고 자신만의 닻을 내렸습니다. 진법자와 같은 인물은 보통 영웅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법자의 삶은 영웅의 서사시에서는 볼 수 없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타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진법자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는 친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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