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재건의 꿈을 외치다
오늘은 평소 다루었던 인물과는 다른 시대와 나라의 인물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바로 발해의 유민인 대연림(大延琳)입니다. 백제,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나중에 멸망을 했더라도 많은 유민이 생기지않고 고려에 그대로 흡수통일되었습니다. 때문에 유민이라고 부를만한 집단이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신라 대신에 거란에 멸망당했던 발해의 유민과 친해져보려고 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내 조상은 대조영, 내 조국은 발해다." 발해라는 나라가 망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발해 출신 사람들의 가슴 속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거란(요)의 땅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자신이 발해인임을 잊지 않았던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친구로 거대한 제국 거란의 심장부에서 '발해 부흥'이라는 위험하고도 위대한 꿈을 꾸었던 발해 태조 대조영의 7대손(11대손 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대연림(大延琳)입니다.
926년 발해가 멸망한 후, 수많은 유민은 거란의 동경(요양)으로 끌려와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망해가던 나라에서 강력한 국력을 지닌 요로 옮겼기에 살만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거란의 횡포는 심해졌습니다. 특히 1029년, 거란 관리들은 발해 사람들에게 낯선 법을 적용해 가혹하게 다스렸고, 심지어 거란의 연 지역에 기근이 들자 발해 유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험한 바닷길로 곡식을 나르게 했습니다.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혀 수많은 동포가 물귀신이 되자 사람들의 원망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때, 분노한 유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일어선 이가 바로 거란 군대의 장교였던 대연림이었습니다. 1029년 8월에 그는 "더 이상 개죽음을 당할 수 없다"며 칼을 뽑았습니다. 그는 악랄했던 거란 관리들을 처단하고 동경(요양)성을 장악한 뒤, 마침내 '흥료국(興遼國)'을 건국했습니다. 비록 이름은 '요를 흥하게 한다'는 뜻이었지만 그 실체는 명백한 발해 부활 시도였습니다. 연호를 '천경(天慶)'이라 짓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의 외침에 억눌려 살던 여진족까지 합세하며 요동 벌판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대연림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우리는 발해의 후손이니 도와달라"며 간절히 손을 내밀었지만 고려는 국제 정세를 의식해 침묵했습니다. 게다가 거란의 대응은 신속하고 잔혹했습니다. 대연림은 거란의 주력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패배했고, 결국 동경성 안으로 들어가 고립된 채 처절한 농성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성 밖에는 거란의 대군이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왔고, 성 안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집을 부수어 불을 때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대연림과 발해 유민들은 1년 가까이 버텼습니다. 100년 만에 찾은 발해를 다시 뺏길 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겠죠. 그러나 무너지는 것은 성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1030년 8월, 절망에 빠진 부하 장수 양상세(楊詳世)가 몰래 성문을 열어 거란군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렇게 대연림은 사로잡혔고 짧았던 발해 부흥의 꿈은 막을 내렸습니다.
대연림의 항쟁은 실패하였지만 거란인들에게는 발해 유민의 무서움을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거란은 발해 유민들이 다시 뭉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거란의 내지(중경, 상경)로 강제 이주시키고 감시를 강화했죠. 거대한 제국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기개를 보여준 대연림과 발해 유민들. 여러분은 오늘 그들과 친해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