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먹, 그리고 영혼을 바다 건너 전한 예술가
지난 시간 발해 유민난 시간 발해 유민 대연림을 끝으로 삼국시대 유민 3명과 친구가 되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3주간 다시 친해져 볼 삼국시대 사람들은 지금처럼 해외여행을 나가기 힘들었던 시절에 타국과 문화 교류를 하면서 식견을 넓혔던 사람들입니다. 그럼 첫 번째 친구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종이는 문명을 담는 그릇이고, 먹은 그 문명을 기록하는 피와 같다." 오늘 소개할 친구는 1,400년 전, 거친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 찬란한 문화의 씨앗을 뿌린 고구려의 승려이자 천재 예술가, 담징(曇徵)입니다.
610년, 고구려 영양왕의 명을 받은 승려 담징은 법정(法定) 스님과 함께 일본행 배에 올랐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주 특별한 선물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바로 종이와 먹, 그리고 채색 재료들이었죠. 당시 고구려는 이미 중국의 제지술을 받아들여서 질 좋고 튼튼한 종이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아직 문자를 기록할 제대로 된 매체조차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담징이 전해준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은 고대 일본 문화계에 그야말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종이가 생기자 비로소 일본은 역사를 기록하고, 불경을 베껴 쓰고, 행정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문명' 그 자체를 선물한 셈입니다.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에서 담징을 "5경(유교 경전)에 능통하고 채색에 뛰어나며, 종이와 먹, 맷돌을 처음 만들었다"라고 굳이 특필한 것은 그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담징의 진가는 물품의 교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 더 빛났습니다. 담징은 당대 고구려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일본 나라의 호류지(법륭사) 금당에는 동양 미술의 정수라 불리는 벽화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1949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지만요.) 거대한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 정토의 장엄한 세계, 바람에 날릴 듯 투명한 옷자락을 휘날리는 보살들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비록 "담징이 그렸다"는 확실한 서명은 없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 그림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의 힘찬 기운과 세련된 채색 기법을 읽어냅니다. 또한 그가 가져간 질 좋은 안료와 채색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대작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담징이 실제로 호류지 금당에 벽화를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담징이 일본에서 머무는 동안 여러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화풍을 전파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는 붓 끝으로 부처의 자비뿐만 아니라 고구려인의 높은 예술혼을 일본 땅에 영원히 새겨놓았던 겁니다.
담징의 삶은 오늘날의 한류를 떠올리게 합니다. 낯선 이국땅에 문화상품을 건네주고 자신의 재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담징. 어쩌면 그는 최초의 '글로벌 아티스트'가 아니었을까요? 그는 먹을 갈아 그 속에 고구려의 깊은 정신을 담았고, 종이를 펴 그 위에 평화와 아름다움이라는 인류 공통의 꿈을 그렸습니다. 문화 교류가이자 예술가 담징. 그와 친해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