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란 감옥을 거부한다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오늘은 제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을 서평 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우리 내면 가장 깊고 어두운 곳, 남들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축축한 지하실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실존주의 문학의 서막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19세기 러시아의 한 초라한 관리가 자신만의 지하에 틀어박혀 세상과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독설과 궤변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섬뜩할 만큼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주인공인 지하 생활자는 스스로를 생쥐보다 못한 존재라고 비하합니다. 그는 지적이고 예민한 데다 본인의 지나친 의식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합니다. 모욕을 당해도 복수하지 못하고, 사랑을 느껴도 다가가지 못한 채, 방구석에서 온갖 시나리오만 쓰며 스스로를 괴롭히죠.
그는 말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일종의 질병이다."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은 벽을 만나면 물러서거나 돌아갑니다. 그러나 의식이 과잉된 주인공은 벽 앞에 서서 '이 벽이 왜 여기 있는가'를 따지다가 벽을 넘지 못하는 자기를 혐오하고 맙니다. 이 찌질하고 모순덩어리인 남자의 독백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속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뒷걸음질 치거나 밤새 이불킥 하며 후회하는 지하 생활자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당대 유행하던 합리적 이기주의와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격렬한 반항입니다. 당시에는 과학과 이성이 발달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을 수학 공식처럼 예측할 수 있고, 사회는 완벽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습니다. 지하 생활자는 이 끔찍한 낙원을 거부합니다.
그는 인간이 피아노 건반이나 오르간의 멈춤쇠가 아니라고 외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단지 내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뻔히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존재이죠. 안락한 노예가 되느니 고통스러운 자유인이 되겠다는 그의 절규는 현대 문명이 강요하는 정답과 효율성 앞에서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본성을 깨우려고 합니다.
이 책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읽는 내내 거울 속의 추한 나를 마주하는 듯한 불편함을 줍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증거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독자적인 자유 의지다. 그 자유가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결과가 아무리 미친 짓이라도 말이다. 2 더하기 2가 4라는 것은 죽음의 시작이다. 나는 2 더하기 2가 5가 되는 것에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