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서평] 숨겨진 차원/에드워드 홀

​공간은 말보다 정직하다

by cm

만원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누가 밀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불쾌감과 긴장을 느낍니다. 단지 낯선 타인이 너무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반대로 텅 빈 도서관에서 누군가 굳이 내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면? 우리는 즉각적인 경계심을 품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이 거리감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입니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공기, 즉,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소통을 지배하는지 밝혀낸 문화인류학의 고전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언어만큼이나 정교하고 강력한 공간의 언어(Proxemics)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인간에게 네 가지 거리 영역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연인이나 가족에게만 허용되는 친밀한 거리, 친구 사이의 개인적 거리, 업무를 위한 사회적 거리, 그리고 연설이나 공연을 위한 공중 거리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눗방울을 몸에 두르고 다니며, 누군가 허락 없이 이 선을 넘으면 본능적인 스트레스 반응(투쟁-도피 반응)을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반응은 심리적 선호의 정도를 넘어서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먹이가 충분해도 공간이 과밀해지자 쥐들은 공격성이 폭발하거나 무기력해지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습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대 도시의 과밀화가 인간의 정신 건강과 사회적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서늘하게 경고합니다.

​이 책의 백미는 문화권마다 다른 공간 감각에 대한 통찰입니다. 미국인은 대화할 때 팔 하나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라틴아메리카나 중동 사람들은 상대방의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서 대화해야 진정성을 느낍니다. ​독일인은 견고한 문과 벽으로 자신의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야 안심하고 일본인은 방 한가운데서 자고 가구들을 벽으로 밀어붙이며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합니다.

서로 다른 공간 문법을 가진 사람들이 만날 때, 우리는 상대를 차가운 사람 혹은 무례하고 침입적인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오해는 언어의 장벽보다 훨씬 더 깊고 본능적입니다. ​이 책은 인간 사이의 거리 두기에 대해서만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나와 타인,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건축과 도시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인문학적 탐구입니다.

“공간은 빈 곳이 아니다. 공간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우리는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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